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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r 16. 2022

사람을 향한 호기심

관찰력이 좋은 내 친구 J는 가끔 지나가는 말로 날 생각에 잠기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10년 전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난 ‘호방한 사람'의 느낌이었는데 이젠 학자 타입으로 변했다는 이야길 해준 적이 있다. 그 변화는 정신적 광야 같았던 베를린에서의 시간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불과 5년여 전인데, 사람이 스스로의 과거에 대해 이렇게 망각하고 새로운 ‘나’에 적응해 살고 있단 게 묘하게 충격적이었다. 마치 난 평생 이랬다는 듯 살고 있는 스스로에게 기만당한 듯한, 배신감 같은 걸 느꼈달까. 어쨌든 그런 그가 나의 한국 생활을 쭉 지켜보다가 해준 이야기는 또 다른 생각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그는 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놀랍다고 했다. 올 한 해 난 새로운 사람들을 정말 여럿 만났다. 적어도 관계의 양적인 측면으론 내 삶에서 가장 풍성했던 시기가 분명하다. 온라인 상으로 수년간 팔로해왔던 분들께 뵙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드렸고, 먼저 보고 싶다고 제안을 주셨거나 혹은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받을 수 있는 자리는 거의 마다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관계로 인한 번아웃이 왔겠다 싶을 정도로. 그간 타지에 사느라 여러 해 밀려있던 숙원사업을 해치우듯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허기진 사람처럼 만들어온 대화들이 올 한 해 내 삶을 지탱한 기둥이었음을 느낀다.



지난 8개월 남짓 나의 놀라운 활동력은 스스로에게도 미스터리였다. 휴가차 영국에 오기 전까지 이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새로운 ‘나’에 익숙해져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호방했던’ 시절의 나를 깜빡 있고 살았던 ‘학자’처럼.)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나를 설명하며 ‘인싸’ 같은 표현을 쓰는 것처럼 듣기 어색한 일도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평가에도 꽤 익숙해졌다. 사실 난 에너지가 무척 한정되어 있는 사람이고 여러모로 매우 전형적인 내향인의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직까진) 쉽게 고갈되지 않는 그 에너지를 지탱해주는 내면의 동기가 바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아닐까 한다. 특히 글을 통해서 느끼는 호기심이 나를 설레게 한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종종 글들의 행간 사이에 멈춰 놀라워하며 상상하곤 한다.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저자를 만나보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온라인 상으로 교류하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건 언제나 약간의 리스크를 수반하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지금까지 크게 나쁜 기억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간 단지 발현될 기회가 없었을 뿐, 이 호기심은 내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난 ‘나’의 신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란 게 이런 핵심적 동력이 되어 내 삶을 이끌 게 될지 몰랐듯, 어느 정도 알만하다 싶으면 새로운 환경을 만나 생각지도 못했던 내 안의 무언가가 그간 기다려왔다는 듯 반응하는 걸 경험한다. 그러니 MBTI 같은 조악한 틀로 사람을 한정 짓고 카테고리화 시키는 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내가 인간의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좋아하는 ‘연금술적 도약’이란 표현을 기억하며, 어디서 무엇으로 변화될지 모를 나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면 또 다른 한 해도 꽤 살만하지 않을까 한다.



덧, 사람 내면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내 동생의 예를 드는데, 그는 6개월 로트 트립을 계획하고 떠난 미국 여행의 첫날에 지갑과 여권을 제외한 모든 짐을 도난당했다. 큰 고생 한번 해보지 않고 자란 그가 바로 귀국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이후 반년 동안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집을 차례로 카우치 서핑하며 보란 듯이 로드트립을 완성하고 돌아왔다.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수십 년 함께 산 가족들도 모르는 내면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각 사람에 대해 정말 많은 걸 말해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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