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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ph May 29. 2022

아무튼, 아스날

만약 ‘아무튼 OO’ 시리즈 제안이 온다면 무슨 주제로 글을 쓰고 싶으세요?


요즘 종종 하는 질문이다. 친애하는 작가 J는 다들 좋아하는 게 너무 많은 자발적 취향 공개의 세상에서 본인은 싫은 게 너무 많다며 ‘아무튼, 싫음’을 쓰겠단다. 뭐가 됐던, ‘ㅇㅇ’ 의 빈칸을 채울 수 있을 만큼 해당 주제에 얽힌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으며 또 그만큼 깊이 생각해본 이야깃거리가 있단 건 근사한 일이다. 누구나 그런 주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게 꼭 판매부수로 이어질 주제는 아니라고 해도.

그러고 보니 이 질문을 처음 받은 건 작년 참여한 글쓰기 모임에서였는데, 결국 <아무튼, 베를린>으로 짧은 글을 써내긴 했지만 내 마음속 OO은 언제나 분명했다. 애증의 세 글자. 아스날.


Aㅏ스날… 이 축구팀과 함께한 20년 희로애락의 역사를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축구에 관심이 1도 없는 분들을 위해 - 아스날(Arsenal)은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 홈구장을 두고 있는 축구팀이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국민 축구팀 토트넘의 북런던 라이벌이자 최대 앙숙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영표 선수도 뛰었다.) 또한 대한민국에 해외축구팬이 대거 유입된 계기인 박지성 선수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최대 숙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통계는 없지만 지성팍이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한 2005년 무렵부터 해외축구를 본 한국 사람 열 중 여덣은 아마 저 두 팀 중 하나를 응원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아스날도 한국 선수를 영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2년간 한 경기 출장에 그쳤고, 한국 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단 이유로 이 팀은 더욱 비호감이 됐으며 지금도 그의 이름은 서포터들 사이에서 암묵적 금지어로 남아있다. 즉 한국에선 여러모로 빌런 포지션.)


제한맨/제한토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토트넘 응원합시다)의 나라에서 아스날 서포터로 살아간다는 건 기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시작하는 경기를 매번 챙겨볼 정도가 아니더라도 최소 아침에 일어나 결과를 확인할 정도의 애정을 가진 이라면 이겨서 기쁜 날보다 주변인들의 조롱을 견뎌야 했던 인고의 시간을 더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만 쭉 살아온 사람이 아스날을 응원하게 된 계기가 내겐 사뭇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짐작컨대, 나처럼 한창 1등 할 때 깜빡 속은 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화끈하고 세련된 공격축구에 낚였을 것이다. 만약 최근 5년 사이 아스날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나는 당신이 1) 정신적 고통을 즐기는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이거나, 2) 연민의 감정이 삶의 핵심동력인 사람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문맥을 때어놓고 봐도 아스날이란 고유명사엔 여러모로 ‘애환’의 정서가 진하게 묻어있다.


니들이 그럼 그렇지..


영어에 보틀잡(bottlejob)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요한 순간에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속어다. 18년 전, 예술적인 축구로 프리미어리그 최초 무패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룬 이후 조금씩 내리막을 걸어온 이 팀의 악질스러운 점은 ‘매년 기대할 이유를 준다’는 것이다. 매년 4등만 해서 4스날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상위권이었지만 최근 몇 년은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왠지 올해는 뭔가 다를 것 같아!’라는 실체가 있는 희망을 줘놓곤 결정적인 순간엔 어김없이, 맥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이긴 경기가 더 많음에도 패배의 역사를 써온 듯한 인상을 남긴다. 보틀잡의 대명사와 같은 놈들이 아닐 수 없다.



라카제트가 아직 골 넣을 줄 알았던 시절


그래도 꼭두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챙겨보고 (영국살 땐 이 고충을 몰랐다), 이 시간 동안은 평소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훌리건의 자아를 입는다. 팀이 지면 찜찜한 기분으로 하루를 산다. 타팀 팬이 던지는 악의 없는 농담에 가끔은 진심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며칠 후 새벽 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이 모든 게 스포츠팀 같은 것에 몰입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겐 적지않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겠단 생각을 종종 하며 나 또한 계속 자문하게 된다. 왜 우린 여전히 서포터로 남아있는가.


승리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답답한 현실을 잊게 해 줄 대리만족이 주목적이라면 그는 스포츠의 팬은 될 수 있으나 서포터는 될 수 없다. 사전적인 의미의 차이는 아니지만 굳이 나누자면 팬과 서포터를 가르는 기준은 거기에 투영시키는 가치의 유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엔 ‘민족'이라는 가치가 투영되어있다고 할 수 있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축구를 단 5분이라도 피치 위에 구현하고 싶다'는 이상주의자 감독과 함께 최전성기를 지나온 아스날의 서포터라면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내면의 동기란 게 모두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중 하나가 ‘dignity’ 혹은 ‘integrity’라 부를 수 있는 무엇이라 생각한다.


응원하는 팀이 지면 꼭 기분이 나빠야 할까,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진 끝에 닿은 짠내 나는 결론. 스포츠에 승패 너머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무엇이 있단 걸 가르쳐준 사람은 이 축구팀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아스날의 전전 감독 아르센 벵거다. (정작 그 자신이 패배를 견디지 못했던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던 게 아이러니지만.) 그로 인해, 언제부턴가 내겐 축구라는 무대 위 22명의 선수들 하나하나가 고유한 서사로 보인다. 나는 경기 중 그들 하나하나의 바디랭귀지에 주목한다. 끔찍했던 부상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동료 선수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플레이가 반복해서 실패했을 때 다음 선택지는 무엇인지, 동료 선수의 실수나 성공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리고 승리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것이 룰을 교묘하게 어기거나 누군가에게 위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해도?) 혹은 팀이 패배할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천문학적인 돈이 개입되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의 장에서 나는 이렇게 승패 너머에 있는 것들을 보고 싶다. 그 정도의 돈을 수령하는 선수들에겐 일종의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연수가 산문 #지지않는다는말 에서 썼듯, 이기지 못할 때에도 끝끝내 지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튼 아스날>은 팔릴 리가 없으므로 출간의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난 20년을 돌아보며 ‘전력을 다해 원했지만 끝끝내 이뤄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형이면서도 묘하게 미래형 같다. 몇 달 후 새로운 시즌이 열리면 똑같은 반복이겠지. 아스날은 내게 적절한 기쁨과 함께 좌절을 안겨주겠지. 하지만 축구가 ‘The Beautiful Game’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조금 더 발견하는 한 해가 될 수 있다면 서포터로서 난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축구를 단 5분이라도 구현하고 싶어 했던 아르센 벵거의 염원은 어쩌면 개개인의 서포터를 통해 이뤄질 수 있었던 걸지도,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덧, 서포터로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클럽레벨석에서 직관한 아르센 벵거의 마지막 홈경기다 (영상첨부.) 18년째 활동중인 아스날 포럼에서 만난 형님께 받은 뜻밖의 선물이었는데 이전에도 글로 쓴 적이 있지만 연희동 책바의 J도 저 포험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 내겐 여러모로 소중한 공간. #하이버리


덧2, 빌헬름 ‘사스날'이라는 화가가 실제로 존재한다. 4위도 아쉬운 요즘 영입이 시급하다.


3, 2022 기준 내가 축구에서 보고 싶은 가치를 가장  보여주고 있는 인물은 리버풀의 감독 위르겐 클롭이다. 왜인지는 인터뷰 영상 참조. 내가 리버풀 팬이 아니란  안타깝게 만드는 사람.  인터뷰가 바로 품격, dignity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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