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눈길 Nov 08. 2024

야, 너두 제니될 수 있어

외워보자 만트라 가꿔보자 마음밭

블랙핑크 제니가 ‘만트라(Mantra)’를 들고 나타났다. ‘모든 여성들을 위한 주문’이라니. 뉴진스님만큼이나 힙한 제목에 평소 만트라에 관심이 많던 나로선 마치 제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양 신이 난다.


만트라라는 낯선 단어, 사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수리수리 마수리'. 마법 주문인 줄만 알았던 이 말은 사실 불교 경전 '천수경’에서 유래한 만트라의 변형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는 구절을 외우면 '구업(口業)', 즉 입으로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단다. 지혜를 담고 있는 말에는 신성한 힘이 깃들어 있고, 이 말을 반복적으로 외움으로써 영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니. 한 뒷담화 하시는 분들, 귀가 번쩍 뜨이시죠?


이처럼 종교에서 유래한 만트라는 명상이나 요가 등을 통해 서양에도 널리 퍼져 이제 일종의 자기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다. 구글에서 간단한 검색으로도 ‘daily mantras’, ‘morning mantras’,  ‘mantras for meditation’ 등 수많은 현대식 만트라들을 만날 수 있다.

I am enough exactly how I am.
내 모습 이대로 충분합니다.
Forgive and let go.
용서하고 내려놉니다.
Progress, not perfection.
완벽하지 않아도 나아갑니다.
The only way through is through.
끝내는 법은 직면뿐.
I can do anything, but not everything.
모든 걸 해낼 순 없지만, 무엇도 할 수 있습니다.
There is no failing, only trying.
실패가 아닙니다. 도전할 뿐입니다.

만트라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를 긍정할 것을 권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실수투성이여도,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연약함을 용서할 것을 제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아 두려움을 떨치고 어려움을 직면할 것을 독려한다.


"말이 쉽지, 흥."

20대의 나는 이런 햇살 같은 말을 들으면 코웃음 치기 바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누군들 말로는 못하겠나. 세상은 변덕스러운 신의 주사위로 돌아가는 불확실의 암흑이고, 삶은 그 어둠을 잊기 위해 눈을 감고 헛된 꿈을 꾸는 것이라 믿었던 시절. 기쁨이나 행복 같은 단어들은 다 팔자 좋은 사람들이 자기 자랑하고 싶을 때 쓰는 인스타그램 필터 같았다. 긍정하라고? 세상은 살아볼 만하니까? 또 희망 장사하는구만. 도전이란 허울 좋은 구실로 무용한 노오력을 채찍질할 뿐이라며 냉소했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듯, 언제 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슬픔과 상실을 기다렸다.


그런데 인생은 참 얄궂지. 한 사람의 부인이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며 나는 변했다. 변할 수밖에 없었다. 내 젖꼭지를 오물거리며 빨고 있는 아이의 보드라운 입술은 너무나 확실한 실존이었기에. 아장거리며 달려와 나에게 폭 안기는 그 통실한 뺨에 대고, 인생은 허망한 거야, 할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엄마였다. 고로 존재했다. 물론 하루아침에 세상을 장밋빛으로 볼 수 있으랴. 평생을 옆으로 걸어온 어미 게 아니던가. 갑자기 전방 직진은 무리였다. 하지만 자식만큼은 앞으로 걷게 가르치고 싶었다. 큰아이 꾸꾸가 중학교 입학 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때. 매일 밤 아이의 이마를 쓸어 넘기며 교리문답 배워주듯 말하곤 했다.

“꾸꾸는 어떤 사람?”
“몰라. 잘 거야.”
“엄만 알아. 꾸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
엄마의 기쁨, 아빠의 자랑.
세상 사람 모두가 널 몰라줘도 엄마 아빠는 널 사랑할 거야.”

이불을 뒤집어쓴 내 아이에게 나 혼자 독백처럼 하는 말. 돌이켜보면 먼 과거 어두운 방에서 혼자 울던 어린 내가 엄마 아빠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니, 누구에게라도 들어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쭈뼛거리다 포기하고 돌아선 말이었다. 저런 신 포도를 누가 먹는담. 달콤한 포도가 간절히 먹고 싶었지만 닿지 못해 슬펐던 여우의 말이었다.


“꾸꾸는 어떤 사람?”
“섀샹애셔 쨰이일 귀햔 샤럄!”

이제 고입을 앞두고 있는 꾸꾸는 뭐 그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대답한다. 혀 짧은 소리는 엄마를 위한 나름의 애교 서비스다.

참으로 말에는 힘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매일 밤 허공에 대고 외우던 나 홀로 교리문답에 꾸꾸는 어색한 볼맨 소리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속하게 된 이상한 나라에 힘겨운 적응을 시작했다. 꾸꾸의 이상한 나라 탐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 어떤 버섯을 먹으면 키가 커지는지, 공작부인의 성미는 어떻게 피해야 할지 등을 어렴풋이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제법 괜찮은 녀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잘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잘할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알아가며, 자신만의 생존 가이드북을 써 내려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라 불리운 힘이라 믿는다. 


놀랍게도 말의 힘은 나에게도 공명이 있었다.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라 부르기 시작하자, 나는 그 귀한 아이를 끝까지 지켜낼 전사가 되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널 몰라줘도 엄마 아빠는 널 사랑할 거야, 이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문처럼 주워섬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할 수 없는 일보단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그 소리가 마치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귀로 들어갈 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마음 한 구석에 숨어 뾰로통하게 세상을 조소하던 어린 나도 함께 듣고 있던 걸까? 아이의 하루를 사랑과 긍정의 말로 열고, 위로와 희망의 말로 닫아주며 내 안의 그 아이도 묘한 위로를 받는 듯했다. 말은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어주었다. 


이른 아침. 백팔배를 시작한다. 절 한 번을 마치고 가슴 앞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참회합니다"라고 말한다.

백팔배를 처음 배울 땐 의아했다. 난 참회할 게 없는데 뭘 참회하란 말이지? 그런데 참 신기했다. 마음에도 없는 '참회합니다'라는 말을 되뇌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 숨겨두었던 기억들이 올라오곤 했다. 전하지 못했던 말들, 매몰차게 외면했던 마음들. 너의 잘못이라 비난했지만 돌아보니 우리의 다름이었을 뿐.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것은 나였구나. 제가 오만했습니다, 참회합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말이 나왔다. 만트라의 어원이 '생각하다'라는 뜻의 인도유럽조어 'mantram'이라는 게 실감 났다. 새로운 생각을 일깨우는 말의 힘이었다.


몸과 마음을 거듭 낮추며 ‘참회합니다’를 반복한다. 꼿꼿이 세우며 살았던 몸과 머리에서 백팔가지 마음이 떨어져 내린다. 마지막 절을 끝낸 자리엔 한 두 가지의 생각들이 남아있다. 기도로 숨을 고르다 보면 한 문장 정도로 응결된다. 오늘 나에게 남은 말은 ‘최고가 아니라 행복합니다’. 첫 절에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말이다. 아니, 오히려 나의 마음은 최고가 아닌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며 쌓여온 시샘이다. 저 작가 분은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가 있지. 매일 브런치 상단을 장식하는 저 멋진 글들 사이에 내 자리는 없구나. 자괴로 가득한 마음에 찾아와 준 새로운 말.


그 말을 읊조리며 출근 준비를 한다. 최고가 아니라 행복합니다. 에디터픽에라도 선정된다면? 아서라, 그다음 글이 얼마나 부담이겠는가. 최고가 아닌 나는 아예 느낄 불안이 없다. 자유롭다. 출근길 종종걸음을 서두르며 또 읊조린다. 최고가 아니라 행복합니다. 그래, 댓글 하나에도 첫사랑 편지 받은 양 마음이 콩닥거릴 수 있으니, 회춘의 기쁨이 별거냐. 매일이 설렘이다. 조례를 위해 교실로 향하면서도 말해본다. 최고가 아니라 행복합니다. 맞다,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 최고보단 최선이라고. 완벽보단 완성이라고. 실패가 아니라 시련일 뿐이라고. 그러니 오늘 하루도 웃으며 시작하자고. 말의 힘을 믿으며 교실 문을 열며 외쳐본다, “좋은 아침!”


매거진의 이전글 학종 탐구, 컨설팅받으면 되는 거 아니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