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맛에 속아 넘어가는 씁쓸한 관계
대한 커피 공화국
'아아'의 계절이 오고 있다. 우리는 커피를 정말 많이 먹는다. 매일매일 밥값에 버금가는 커피값을 쓰며 산다.
정말 그렇다. 서울의 어느 버스정류장을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켜켜이 싸인 아메리카노 컵들. 언제부터였는지 커피를 참 많이 마신다.
물론 나도 커피를 즐기는 편이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한잔 점심 먹고 한잔 퇴근하기 전 또 한잔. 커피를 내려 마신다. 아주 맑고 구수한 에스프레소 향기를 맡으며 고급지게 하루를 시작한다.
조용한 사무실에 커피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카페인 때문인가?
달달한 인스턴트커피
사무실 커피는 두 종류가 있다. 고급진 커피와 맥심. 그렇다 그 노란 기다란 스틱에 담긴 황금비율의 가루다.
'그 맥심'이다.
참 묘한 것이 분명 아메리카노를 먹었음에도 습관처럼 한 봉지 뜯어서 먹게 된다. 마치 간식처럼.
달달하고 맛이 참 좋다.
배가 고플 때 먹으면 왠지 배가 부른 것 같고, 졸려울 때 먹으면 잠이 깨는 그런 달달하고 익숙한 맛이다.
맥심을 마시면 커피 고유의 씁쓸함이라던지 풍미라던지 커피 본연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물을 적게 부어먹는 그 진한 달달함을 원한다.
인스턴트커피의 매력이랄까.
인스턴트는 '즉시', '즉석에'라는 의미로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들을 말하기도 한다.
봉지를 뜯어 물만 부으면 되는 믹스커피처럼 쉽게 관계 맺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가벼움을 단맛을 더해 감춰버린다.
인스턴트식으로.
귀퉁이 VIP석
나는 모임자리에서 가운데 앉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양쪽 방향을 신경 써야 하고 어쩌면 한쪽을 등지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저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저 멀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까지 세심하게 귀 기울인다.
귀퉁이 VIP석이 좋은 점은 사람을 관찰하기 쉽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살피다 보면 참 달달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래 믹스커피처럼.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한테는 특히나 더 진한 단내를 풍긴다. 내공이 그득한 그들은 단번에 커피맛을 구별해 낸다. 이것은 인스턴트커피인가 아메리카노인가.
그렇지 못한 축은 그 단맛에 취해 속아 넘어간다. 지나 보면 알 것이다 커피의 본질은 씁쓸함이라는 것을.
나는 단 맛을 걷어낸 담백한 관계가. 늦지만 은근하고 구수한 풍미가 있는 아메리카노가 좋다.
맥심을 한잔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