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철학 내 이슈와라, 이스와라 신에 대한 이야기
인도철학은 크게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요가 철학은 전자로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실천주의적 학문입니다.
요가의 학문적 바탕에는 상키야 철학이라는 기반이 있습니다.
요가는 자체적인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지 않아 많은 개념을 상키야 철학에서 차용합니다.
요가와 상키야 철학의 대표적인 구분이 이 이슈와라, 이스와라신에 대한 존재 여부입니다.
187가지 뿌루샤 중 특별한 뿌루샤인 이슈와라는 어떤 존재일까요?
고대 인도인들은 행위 중심의 생활방식을 가지고 살며 자연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우파니샤드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종교, 철학적 사상의 주채로 떠오릅니다.
이슈와라 신은 브리하드 아란야까 우파니샤드에서 첫 등장하게 됩니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의 단어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체가 자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을 할 수 있기에 이슈와라 = 자재신의 개념의 등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파니샤드에서의 신은 이전 시대의 찬가에 등장하는 다신론의 형태가 아니라
최상의 신은 신들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우주를 구성하는 존재들 속에 내재하며 안내자로서 그곳에 거주하는 이샤 즉 , 이슈와라로 표현됩니다.
이는 우주의 본질인 동시에 브라흐만의 인 격화된 형태가 됩니다. 그러나 여타의 신과 다르게 창조자의 개념이 아닌 하나의 원리로 봅니다.
신에 대한 헌신 개념의 박티요가에서 더 잘 관찰됩니다.
그동안의 수행이 브라흐만 계급의 수행이었다면 이 헌신 개념을 통해 취약 계층 및 대중에게 개방되어 종교적 욕구에 대한 충족이 일어납니다. 헌신과 신에게 행위의 결과를 바치며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를 방법론으로 채택하여 새로운 형태의 해탈 방편을 제시합니다.
요가수트라에서 이슈와라의 특성을 살펴보면 상키야 철학 이론의 실천적 적용으로 다른 자아와 구별되는 초월적인 자아로써 상정됩니다. 수직관계의 신이 아닌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하나의 위대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요가수트라에서 요가는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라 정의하고 주석서에서 요가는 삼매라고 설명합니다.
요가는 마음의 작용이 멈춰 삼매에 이르는 수행이라고 볼 수 있겠죠? 여기에 이르는 방법론 중 하나를 신에 헌신으로 제시됩니다.
호이에르슈타인에 따르면 헌신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보다 높은 실재에 대한 경배로 기울게 되는데 이러한 헌신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개인에게는 객관적인 실재이고 힘이지만 깨달음의 안에서는 요가 수행자의 초월적 자아와 일치하는 것이며 요가 수행자의 초월적 존재를 향한 열린 마음으로 설명합니다.
이슈와라 라는 뿌루샤는 왜 특별할까요?
- 번뇌, 행위, 행위의 결과 그리고 행위의 결과인 의도들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경험이 아닌 인지로 이해됩니다.
-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미래에도 속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 사트바와 우월성이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는 절대자, 해탈자이기 때문입니다.
- 동등, 우세의 개념을 초월한 신통을 지닌 자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속박은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물질, 변화, 시주 이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돈존의 상태를 얻는 것이 독존자입니다.
쁘라니다나- 확실하게 가까이 놓는 것, 특별한 헌신으로 파악
박티 - 헌신, 몫, 할당, 배분, 귀의
인간이 신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의미
쁘라나와 = om에 대한 암송은 이슈와라에 대한 염송이며 이것이 japa 자파 수행을 의미합니다.
끄리야요가, 행위의 도구
빠딴잘리는 삼매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실천방법으로 요가 수행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마음이 산만하여 집중이 어렵고 활동적인 마음을 지닌 자들에게 적합한 수행법을 제시합니다.
이는 번뇌를 약화시키며 삼매를 고무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에게 완전히 맡겨버리고 온전한 자신의 에고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에고를 버린다는 것은 비이기적 성향을 고양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욕망 없는 행위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치고 결과를 버리는 것을 실천합니다.
끄리야 요가는 개별화된 의식을 유지하는 잠재적 활성 물들이 점차적으로 제거됨으로써 자아와 동일시되는 무아경의 길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말이 참 어렵네요.
바가바드 기다에서 설명하는 까르마 요가는 욕망이 없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직접적인 삶 속에서의 행위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다른 힌두 정통 학파에서 관찰되는 창조주로서의 자재신이 아닌 요가학파에서 자재신은 실제적, 경험적 존재로써 수행을 위한 방편으로서 상정되었습니다.
종교적 의미보다 실천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오늘은 전문서적과 논문을 참고하다 보니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나왔네요.
오늘도 현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