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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

파리의 우버운전사

한 선배의 말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

함께 있던 선생님이 반복하셨다.

그래, 그러게..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

혼잣말을 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선배는 다시 말했다.

"정말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요?"

나는 머릿속으로 물었다.

그러게요..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요..


유난히 산책을 좋아했던 작곡가

그래서 걷는 모습의 그림이 많던 작곡가.

그래서 그 선배는, 어디까지 갔을까?라고 물은 것일까?


산책하는 베토벤


청소를 마치고,

정명훈과 임윤찬의 공연을 듣자니,

그날의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

진로가 불확실한 인문학자, 늦깎이 박사과정생, 그리고 어학원생이 함꼐했던 술자리,

어쩌면 그렇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에, 인문학자들의 생계는 늘 불안 불안한지도 모른다...


"세계의 유수한 대학들에서 박사를 세 개나 취득한 그녀의 수입이,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 아주머니의 월급보다 적었다."

두고두고 웃었고, 또 두고두고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평론가 김갑수 선생의 친구분에 대한 회고였다.


맞다.

눈앞의 수익을 따지지 못하고, 눈앞의 이윤을 따지지 못하고,

200년 전에 죽은 작곡가가 어디까지 걷고 있었을까?라고 묻는 인문학자들의 질문엔, 

철없음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늘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그러나,

난 그런 질문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것이 돈이 되지는 않겠으나,

그 삶만큼은 가난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조차도, 돈이 없으니 따로 위로를 삼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도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베토벤이 어디까지 갔을까를 물었던 그 저녁,

우리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대하 이야기를 했었다.

사회에서 때때로 비굴해지는 지식인의 초상을 담았던 영화,

그렇게 상처들을 후벼 팠던 영화..

그러나, 그렇게 상처가 후벼 파져서 사회에서 소외된다고 해도,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자발적 소외, 그렇게 주체적으로 궁핍해지면,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묻게 되고, 세상을 더 가깝게 만나게 된다.

그렇게, 가난한 작은 방 안에서, 머릿속 생각의 공간은 이성과 함께 그 방의 문턱을 넘는다.

마음은 감성이라는 감각과 몇몇 감동으로 적셔질 것이다. 

마치, 바슐라르가 매일 책상에 앉아 지식의 세례를 기도하며 행복해했던 것처럼..

카잘스가 매일 아침 바흐의 곡을 연습하며, 바흐 음악의 세례를 온 집안에 내리게 했던 것처럼..

이것이,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덧없고 무력해 보이는 질문들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이다.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

답을 알지 못한 채 떠난 그의 길이 있었기에,

그의 발자취를 음악으로 들으며, 우리는 그와 함께 걷는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잠깐 딴생각과 딴 세상을, 그리고 새로운 세계와 마르지 않는 감동을 얻는다.


바흐는 끝이 없었고, 

베토벤은 늘 걷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을 사는 우리도 걷는다.

그 방향이, 

돈과, 권력과, 화려함과, 명품백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해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지친 사람과 함께 걷고, 낙오된 사람은 기다려주고, 아픈 사람은 업고 갈 수 있는 그런 길이기를...

베토벤은 난폭했을지 모르나, 그의 음악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괴팍스러운 지휘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토스카니니도 무솔리니의 독재에는 완고하게 저항했다.

팔레스타인에서 해변을 바라보던 말러의 모습에선, 말로 할 수 없는 질문과 회한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인간의 길을 걸었던  수많은 아름다웠던 사람들처럼,

오늘도 걷는다.

베토벤은 어디까지 갔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베토벤을 듣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LnhImh66O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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