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버 운전사
"공기를 바꾸는 배우예요"
우민호 감독이 배우 이병헌을 두고 한 말이었다.
매불쇼에 초대된 자리에서, 메인 진행자인 최욱 앵커가
"이병헌은 왜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거냐?"라고 다짜고짜 묻자 이렇게 답한 것이다.
타고난 것인지, 노력인지, 분명하게 정의한 것은 아니지만,
(타고남도 있고, 노력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생각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그 알 수 없는 배우가 가진 힘, 카리스마에 대해 감독은 자신이 겪은 바를 이야기한 것이다.
리허설에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병헌의 표정과 눈빛이 생각났다.
때론 바보스러운 능청스러운 연기에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는 비장한 표정까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눈빛과,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우민호 감독도 첫 번째로 꼽은-중저음의 그 깊은 '음성'까지.
'아! 그렇게 공기를 바꾸었겠구나..'라고 상상이 되었다.
이병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며칠뒤,
올해 듣기로 한 라벨의 음악을 찾던 중 프랑스 피아니스트 샹송 프랑수아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도서관엔 읽어야 할 책들이 더 많이 쌓여갔다는,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의 독백처럼, 들어도 들어도 모르는 음악은 끝이 없다.
우연히 찾게 된 조성진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고,
상송 프랑수아의 연주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첫 소절에서 '공기를 바꾼다'는 우민호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이 연주자도 공기를 바꾸고 있다.'
공기를 바꾼다
처음 들은 것은 쇼팽의 녹턴이었다.
자주 들었던 귀에 익은 쇼팽의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이, 그렇게 다르게 느껴진 것은,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정해진 길을 걷는 듯하다가도,
작곡가가 아닌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연주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어딘가를 더 일그러뜨리고, 더 강조하면서,
자신의 '의도'로 쇼팽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작곡가보다 연주자를 먼저 떠올리게 하며,
소리와 공간을 지배하고, 그렇게 '공기를 바꾸고'있었다.
피아니스트의 얼굴을 보고 한번 더 놀랬다. 영화배우를 해도 되었을 만큼 잘생긴 남자였다.
그의 생애를 읽고 또다시 놀랬다. 알코올 중독이 심했으며,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떤 역사가 있었길래,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빨리 떠나야 했을지 알 수 없었고,
그가 연주가는 녹턴을 들으면서,
아,, 이 사람도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구나..라는 상상만 할 뿐이었다.
앞으로 더 듣게 되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놀라웠던 것은, 1966년 녹음된 연주였다는 사실이다.
49년,
반세기가 지난 연주인데,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고루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날카로운 날 위에 서있는 느낌의 연주였다.
그렇게 날카로웠기에, 연주를 마치자마자 맥주를 들이켜러 바(Bar)로 달려가야 했을까?
자신을 알코올 속에 던질 수밖에 없었었 그 삶이,
첫곡부터 이미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깊은 연주와 슬픈 삶이었다...
라벨의 연주는 달랐다.
그도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까?라는 느낌이 드는 평안함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라벨의 음악을 들으면 스위스의 향기가 난다.
사진에서 본 평안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자연의 스위스가 생각나는,
라벨의 아버지가 스위스계 프랑스인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알 수 없는 '평안함'이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엔 있다.
그 평 안 함 속에,
이 까탈스러웠을 피아니스트도 잠시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41세에 요절한 샹송 프랑수와, 그리고 알 수 없는 신비를 가진 배우 이병헌,
예술가들의 삶 속엔,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업이 '감동'을 만들어내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설명할 수 없고, 짐작만 할 뿐인 그런 '사연'들.
그래서 예술가들의 잘못은 좀 너그럽게 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고되고 거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그들도 그렇게 거칠게 상처받으며 산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베토벤이 적어놓은 것처럼,
'꼭 그래야만 해? 응 꼭 그래야만 해...'
언젠가 프랑스의 아카데미 상인 세자르상의 시상식,
행사를 시작하며 진행자는 뼈 있는 농담을 던진다.
수상자들에게 수상소감 중 부모님들께 감사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솔직해 집시다.
여러분이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관심과 보호 속에 자랐다면,
여러분이 영화판에 들어오는 일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모두 무언가 이해한듯한 눈빛과 무언가에 위로를 받은듯한 웃음과 표정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708pkuKeDs
https://www.youtube.com/watch?v=1xx5VDoyRsM
https://www.youtube.com/watch?v=Y49PD4Hzs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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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dpJ6HZ8zk1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