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유보다 더 아름답고,
박보검보다 더 멋있더라...

위대한 일상 2025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미국작가 더그 에이트킨의 '일렉트릭 지구'였다.

검은 방에 두 벽면에 비추어진 영상작업이었는데,

'아!'하고 탄성이 나왔던 장면은,

등장인물이 길을 걷다 걷어찬 병뚜껑이 땅을 구르며 옆화면으로 넘어가고,

굴러가던 병뚜껑 시선으로 화면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 다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는 혼란스러운 '포스트 모던'물결이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이해되지 않지만,

서구중심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탈중심, 그리고 제3세계의 부각이라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왔다.

그렇게 에이트킨의 작업에서 보인 '주인공'이 된 '병뚜껑'의 모습이 상쾌했다.

늘 주인공만 비추던 세상이 아닌, 주인공과 주변을 함께 비추는 세상이 아름다웠다.


세간에 화제가 된,

'폭삭 속았어요'를 보며 내가 좋았던 것은,

조연배우들의 모습이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굴곡진 제주 아낙들의 삶, 어머님들의 삶은.

이미 파친코와 다른 많은 드라마에서 이미 보았기에 익숙했다.

우리 어머님들의 삶이 모두 그러했다.


하여,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배우들의 극 중 삶이 아니라, 배우들의 삶, 그 삶 자체였다.

조연들이 빛나고 있었다.

조연배우들은, 작중의 인물의 고된 삶이 아닌, 그분들이 걸어온 삶이 느껴졌다.


주인공만 주목받는, 유독 주인공 여배우 남배우만 사랑받던 한국사회에서,

언제부턴가 빛을 내기 시작한 조연 배우들의 모습은,

외모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의 삶을 일구어낸 한 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이었다.

세월이 만든 아름다움은 파릇함이 주는 아름다움이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나문희 선생의 깊은 눈빛이, 깊게 페인 주름이,

걸어론 길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이미 말이 필요 없는 염혜란에서부터,

슬의생에서 조용한 연변 아주머니였던 이수미와

밀회와 많은 드라마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찍어온 백지원과

이태원 클래스에서 맘 좋은 할머니셨던 차미경과

미생에서 혼술을 마시고서야 잠이 들던 이 과장의 박해준까지.

반짝반짝 조연들이 빛나고 있었다.


주목받지 않아도,

많은 돈을 벌지 못해도,

연기가 좋아서 그렇게 오랜 무명의 삶을 살아온 그들은 너무나 멋있고,

바싹 마른 내 가슴에 위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멋진 배우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멋진 사람들....

그래, 우린 망할 수가 없겠어...


종종 내가 꿈꾸는 나라는,

촌스럽고 말 많은, 민생연구소 안진걸 소장 같은 분이 '장관'을 하는 나라였다.

루져의 상징인 최욱이 국민 엠씨가 되는 나라였다.

좋은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발 벋고, 사회에서 주인공이 아닌데도,

주인처럼 뛰는 분들이 나라의 일을 맡아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회였다.


드라마에 나온,

사진만 찍히기를 원하는 계장처럼,

지금의 우리나라엔 안타깝게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못해낼 사람들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있다.

아름다운 조연들은 말없이 성실히 살아가는데,

그릇이 되지 않는, 물려받은 자산으로 자리를 꿰찬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살고 있는 수많은 조연들의 삶을 명줄을 쥐곤 한다.


실망하지도,

낙담하지도 않는다.

폭삭 속았어요 속의 수많은 조연들과 진지한 엑스트라들의 연기와 그 삶에 위안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좋은 야당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의 목숨을 살려준 보좌진들이 있고,

무엇보다 응원봉을 들고 있는 무명의 수많은 빛나는 조연들, 시민들이 있다.


폭삭 속았어요를 보며,

영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을 묵묵히 일구고 있는 소시민이라는,

어디선가 들었던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멋진 조연배우들을 보며, 그렇게 위안받았다.

그렇게 내란이 끝나지 않은 또 한 주말을 넘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정말 멋지십니다..

아이유보다 더 아름답고,

박보검보다 더 멋지십니다.


(물론 아이유도 박보검도 아름답고 멋있다.

아이유의 시위대 지원은 더없이 멋졌다..

고마워요

아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RYwS11BLw3k



https://www.youtube.com/watch?v=HhMrdCFlTlk



IMG_20250322_0004.jpg


#thegreatdays2025 18 Mars 2025

#아이유 보다 더 아름답고, #박보검 보다 더 멋있더라...

그녀의 눈빛엔 세상이 있다. #염혜란 #배우 #폭삭속았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