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 (3/3)
슬프도록 아름다운 길이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워서
그래서 슬픈 길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그려 놓고서, 왜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는지,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그 아름다움에 가까이하지 말고,
편하게 살았다면, 그러면 힘들지 않지 않았을까..라고 안타까워하게 되는,
그래서,
고흐의 길은 만나면 만날수록, 아름답고, 그래서 더 슬프다.
마치 압생트 잔 위에 걸쳐진 설탕이 물에 녹아 떨어지듯,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에 설탕이 녹듯이
그의 삶도 그렇게 녹았던 것은 아닌지...
지난 글을 쓰며, 왜 어째서,
머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노인의 그림의 제목이 영원의 문 앞일까 궁금했다.
답을 찾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서,
고흐가 그랬듯, 와인 한잔과 저녁을 먹고,
담배 한 개비와 산책을 하며,
답이 스치고 지났다.
절망 앞에 있으니,
영원의 문 앞인 거였네..
고흐는 인생이란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이고, 슬픔은 끝이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마치 거울 앞에 서듯 그런 인생 앞에 서게 되면,
머리를 안고 고개를 떨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암흑 같은 어둠을 보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고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고흐는 어쩌면, 병원에서 절규하는 그 사람을 보고,
고통으로 가득 찬 인생의 앞에 서있던 자신을 본 것은 아닌지..
그도 내가 섰던 자리에 당신도 서있군요...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지..
그래서 그 작품의 제목은 결국,
영원히 고통뿐인 인생의 앞,
영원의 앞은 아니었는지...
왜 고개를 돌리지 못했을까.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면,
그냥 그림을 그만두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고흐는 목사의 길을 포기하고,
사설 선교사의 길도 포기당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두 명의 여인과 아이들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에,
그림마저 포기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철학자 아감벤은 자신의 저서 '내용 없는 인간'에서 고흐의 쪽지를 인용한다.
"Et bien, mon travail à moi,
j'y risque ma vie, et ma raison y a sombré à moitié...
(그래, 나만의 일, 그것을 위해 내 삶을 위험에 몰아넣었고,
그것 때문에 내 이성의 절반은 암흑 속에 묻혀 버렸다.)"
그 쪽지는, 고흐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한 날, 그의 주머니에 있던 것이다.
독백으로 적은 쪽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였는데,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내용이 너무 거칠어서, 고흐는 차마 그 편지를 보내지 못했고,
테오에겐, 내용을 순화하여 다시 써서 보내고,
그 보내지 못한 편지가 주머니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내지 못한 편지에,
자신이 예술 때문에 충분히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아감벤은 이 메모를 인용하며,
'예술' '창작'으로 인해 '위험'을 감수하는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그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의 관점에서 예술을 판단하는 시대에 접어들며,
그 판단의 기준은 '미학'이라 지칭되고,
감상자의 기준은 나날이 높아지며,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창작자는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과거엔, 예술가는 신의 유일한 권리인 '창조'를 '훔친 죄'로 고통받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젠, 그것이 '신의 벌'이 아닌,
예술가가, 스스로 관객과 대중과 감상자와 비평가의 기준에 맞서,
'목숨을 건 승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예술가들은 적당히 세상을 속이며 살기도 하고,
어떤 예술가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커트 코베인이 그 어린 나이에 죽음을 택하며 남긴 말은 하나였다.
'관객을 더 이상 속일 수 없다.'
고흐는,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논란을 떠나
그만 모든 것을 멈추고 싶어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이 그랬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어..."
왜 저렇게 아름답게 피었어야 했나..
차라리 추하게 행복하고 말지,
왜 슬프게 저렇게 아름답게 걸었을까.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하기엔,
자신이 선택한 것이 너무 분명해서,
그래서, 그래서 슬펐다.
아름답도록 슬픈 길이었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운명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0E-0kTdg-k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았던 고흐를 생각하면,
늘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 '미션'에서. 두 주인공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다.
원주민을 '학살'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영국제국과
그 군대에 맞서 싸울 것을 결심한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는
가브리엘 신부(제러미 아이언스)를 찾아가 '축복'을 해달라 하고 부탁한다.
그러나 가브리엘 신부는 이를 거절한다.
그 길이 옳다면 이미 하느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런 세상이라면, 폭력을 써야 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고흐도 그러지 않았을까,
세상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곳에선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것을,,
나와 세상이 맞지 않다는 것을..
돈 맥클린의 빈센트의 가사처럼,
세상은 영원히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것을 너무 잘 알았던 것은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Dhf4x_jbEV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