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3/3)
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 (3/3)
빈센트, 영원의 문 앞에서... 3
별을 보다..
세잔은 모네를 두고 '신의 눈을 가진 자'라고 말했다. 찬사와 조롱이, 함께 담긴 말이었다.
세잔에게 색채란, 형태 이후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세잔이 형태만 찾은 것은 아니다.
세잔은 형태 이전의 그 '무엇'을 찾았다.
사물을 표피를 넘어, 그 사물의 본질을, 만물의 본질을 찾았다.
'사과'하나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호언했던 세잔은, 철학자에 가까운 화가였다.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윤운중선생은
세잔에 대해 속 시원한 해석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만큼 세잔과 그의 작품은, 쉬운 주제가 아니다.
'르누아르의 사과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세잔의 사과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멋진 표현이 잘 설명해 주듯,
세잔은 그림으로 철학하고 사유했다.
그런데, 그렇게 비본질적인 외피를 터부시 했던 세잔조차도
모네의 '눈'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랬다... 모네는 신의 눈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고흐는?
고흐는,
별을 본 사람이다.
1989년에...
지금 같은 천체 망원경이 없던 시대에,
지금만큼, 아니 지금보다 더 정확히 별의 모습을 보았고, 그렸다.
세잔이 만물의 본질을 찾았다면,
고흐는 세상의 본질을 찾고 있었다.
고흐는 말했다.
"삶의 진실을 보려면,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고희 역시도, 세잔과 다른 방향으로 그림과 함께 철학을 하고 있었다.
세잔이 만물의 근원을 원, 원기둥, 원뿔 같은 형태로 환원했다면,
고흐는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았던 것처럼 보인다.
눈이 닿는 사물들과 만나는 사람들, 느끼는 바람, 보이는 자연,
그것이 왜 거기에 그렇게 존재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하면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고흐는 지구에서, 자신의 삶 앞에 질문을 던졌고,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보이는 데로' 그렸다.
"저기 봐 나뭇잎이 흔들리지? 그런데 흔들리는 나뭇잎을 그리는 게 아니야,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그리는 거야!"
서점에 켜둔 텔레비전에서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등장인물이 고흐였다.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가 어린 주인공에게 한 말이었다.
"바람을 그리는 거야."라고,
무심코 책을 포장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바로 저거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텔레비전용 영화였다.
어린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고흐를 만나는 터무니없이 황당무계한 영화였다.
그러나 그 어이없는 영화에서 더 어이없게도 감독은 고흐를 알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었던 서점 아저씨는 손님의 책을 포장하다 말고,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저 대목을 듣고,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라고 외치듯, 말했던 거였다.
그리고 나를 무섭도록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저거야, 사물의 외양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봐야 하는 거야..
나뭇잎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나뭇잎이 아니라,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을 봐야 하는 거야,
그게 본질인 거야.."
분명,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역사의 명작인 렘브란트의 '야경'을 답사했을 고흐는, 램브란트가 그 어둠 속에서 잡아낸 '빛'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파리에 와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아를에 가서야 밤의 카페를 그리며 절정에 이른다.
아를에서 밤의 빛을 발견한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쓴다.
"사흘 연속으로 밤에 그림을 그리고 낮에 잠을 잤어.
난 자주 생각해,
밤이 낮보다, 더 생생하고 풍부한 색을 지녔다고..." 1988년 9월 8일 아를에서, 편지 533.
새로운 세계의 발견은 '환희'에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을 모두 세세히 동생 테오에게 그 흥분과 함께 전한다. 그리고 다른 많은 화가들에게도 이것을 나누고자 아를에서의 예술 공동체를 만드는 원대한 꿈과 함께 많은 예술가들을 아를로 초대하지만 아무도 이에 응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동생 테오의 적극적인 권유로 아를행을 결심하게 되는 것은 고갱이 유일했다.
고갱이 온다는 사실에 고흐는 무척 기뻤던 것 같다. 방을 노랗게 꾸미해 해바라기를 그려 고갱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고갱을 기다리며 그린 작품이 바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사랑하는 테오, 50프랑은 잘 받았어.
하늘은 청록색, 물은 진청색, 땅은 연보라,
마을은 파란색, 자주색,
가스등은 노란색이며,
반사광은 붉은색에서 녹청색을 번지고 있어,
큰 곰자리가 초록빛, 분홍빛으로 반짝이고 있는데,
그 은은한 빛은 가스등의 강렬한 금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어
전경에는 연인 두 사람의 형상이 그려놓았어..' 1988년 9월 28일 아를에서... 편지 543
망원경도 없던 시절,
고흐는 어떻게 별의 색을 두고,
초록빛, 분홍빛으로 반짝이고 있다고 적었을까...
도시의 빛이 반사된 착시였을까..
정작 론강의 그림에선, 노란 황금색으로 그려두었지만,
그가 적은 것은 분명,
'큰 곰자리가 초록빛, 분홍빛으로 반짝이고 있는데, '였다.
그리고, 더 가디언지에 실린 은하계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다.
허블망원경과 ai로 복원된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 속 별들은 초록빛, 분홍빛이었다.
고흐의 편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고흐가 맞았네..
고흐가 제대로 본 것이 맞았네...'
처음으로, 그가 지구라는 행성에 불시착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별은 본 화가..
큰 곰자리...
(이미지 출처- https://esahubble.org/images/opo0706b/)
This image at left, taken by Akira Fujii with a backyard telescope, shows the location of the Hubble observations near the Big Dipper.Credit:
A. Fujii
This region of the Carina Nebula is known as ‘Mystic Mountain’. In this composite image we see the chaotic activity atop a three-light-year-tall pillar of gas and dust that is being eaten away by the brilliant light from nearby bright stars. Jets of gas are also being fired from within the pillar by infant stars.
Photograph: Hubble Space Telescope/NASA/ESA
별이 정말,
고흐가 적은 데로 분홍빛이었다.
그리고 지난 6월 27일, Vera C. Rubin Observatory가 촬영한 첫 우주 이미지가 공개됐다.
사진을 보자마자, 생 래미의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올랐다.
그 소용돌이가, 대기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별의 소용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고흐가 지구에 불시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 레미에서 그린 그림은, 아를에서 정신 착란을 겪고, 귀를 자른 후, 입원한 상태에서 그린 것이다.
지구의 삶에 지쳐가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ospe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43 )
638번째 편지, 1888년 7월 9일
그냥... 별을 보면 늘 꿈을 꾸게 돼.
프랑스 지도에 찍힌 까만 점들 — 도시나 마을 같은 — 그걸 보면 떠올리는 상상처럼 말이야.
‘왜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점들 — 별들이지 — 왜 프랑스 지도에 찍힌 검은 점들보다
우리가 더 못 다가가는 존재여야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돼.
타라스콩이나 루앙 같은 데 가려면 기차를 타잖아.
그렇듯이, 별에 가려면... 죽음을 타고 가는 거 아닐까 싶은 거지.
이 비유에서 확실한 건 하나야 —
살아 있을 땐 별에 못 가고,
죽은 다음엔 기차는 못 타.
그러니까 콜레라, 결석, 폐결핵, 암 같은 병들이
지상에서는 기차나 증기선, 마차가 있는 것처럼
‘하늘로 가는 교통수단’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이 들어 평화롭게 죽는 건...
별까지 ‘걸어가는’ 느낌일지도 모르겠고.
이제 늦었으니까 이만 자려고 해.
잘 자, 테오. 좋은 꿈 꾸고...
행운을 빌게.
악수 한 번.
언제나 네 형,
빈센트
(원문 출처 https://vangoghletters.org/vg/letters/let638/letter.html )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https://www.youtube.com/watch?v=0vwowOBoMRw
(3/3) 빈센트, 영원의 문 앞에서 4
슬프도록,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