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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빈센트,
영원의 문 앞에서... 2

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3/3)

빈센트,

영원의 문 앞에서... 2

나를 깨운, 한 아이의 바보 같은 질문(3/3)




고흐의 어두웠던 삶과는 별개로, 그에게 주어진 예술적 환경은 훌륭했다.

구필화방에서 미술중개상으로 성공한 삼촌을 둔 것도 행운 중 하나였다.

당시 구필 화방은 유럽에서 최초로 미국에 판화 수출을 성공했을 만큼 수준 있는 화방이었다. 나중에 테오가 이곳에 취직하고, 자리 잡으며 형의 후견인 역할을 톡톡히(짧은 기간이지만) 할 수 있었던 것도, 구필화방이 당시 파리 미술계에서 가진 입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파리의 테오가 자리를 잡았던 1986년 3월, 고흐가 파리로 온다.

그러나 파리의 생활이 고흐에게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1세대 인상파들이 파리 화단을 주름잡던 시기였다. 1940년생의 모네와 동년배인 1841년생의 르누아르, 같은 인상파였지만 연배가 높았던 1930년생의 피사로 등이 이미 아카데미와 대결을 이겨내며 주류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들의 눈에 고흐는, 그림을 늦게 시작한 네덜란드에서 온 테오의 동생 정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당시 화상이었던 테오의 주선으로 고흐는 인상파의 거목들과 통성명 정도는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인상파의 주류에 합류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처지의 화가가 바로 고갱이었다.

Eugène Henri Paul Gauguin (7 June 1848 – 8 May 1903)


고흐가 구상한 아를의 예술가 공동체에 유일한 응답자인 고갱은 고흐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잘 나가는 주식 중개상이었던 고갱은 1973년경부터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던 주말화가였다. 그러던 중, 주식 시장의 침채와 맞물려, 35세 때인 1885년,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고갱은 고흐보다 일곱 살이 많은 1948년 생이었다. 연대기적으로 1940년대 생인 모네보다 8살이 어렸고, 1953년생인 고흐보다는 7살이 많았다. 젊은 시절 선원으로 일했었고, 잘 나가는 증권맨으로 준 부르주아적 삶을 살았던 고갱은(펜싱이 취미였을 정도다. 이것은 나중에 고희 귀 절단 사건과도 연관되는 소문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늦게 그림을 시작했다는 핸디캡을 잊고, 주류 화단이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고, 자신이 고흐가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는 것은 그리 유쾌하게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모네에 대해서도 고흐는 경외심을 갖고 있었지만, 고갱은 모네에 대해서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카미유 피사로 10 juillet 1830 -13 novembre 1903


실제로 고흐가 인상파 1세대와 직접적인 교류가 많았던 것 같지는 않으나 모네는 고흐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파 1세대 동료이자, 나이는 10년이 더 많았던 피사로의 경우, 고흐 사후에 '젊은 세대들 중에 깊은 빈자리를 느끼게 될 것이다.'라는 진심 어린 '추도사'를 남겼을 만큼, 젊은 후배 고흐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고흐가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아를로 내려가게 된 동기도 피사로의 권유라는 설이 있다.


고흐는 남쪽으로 떠난다. 그때가 1888년 2월이었다. 당초의 목적지는 아를이 아닌 미디(midi)라고 알려져 있지만 중요치 않다. 고흐는 파리를 떠나 기차를 타고 16시간을 달려 2월 아를에 도착한다.



이미지 출처 :

Vincent van Gogh Date 1888 Matériau huile sur toile Lieu de création Arles Dimensions (H × L) 73 × 59,5 cm Localisation Musée Kröller-Müller



흥미로운 것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2월이었지만, 남쪽의 겨울엔 '컬러', 색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흐가 남쪽에서 찾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프랑스의 강력한 햇살이 만드는 색채였다.

구름이 붉은 노을로 물들고, 비라도 내리면, 붉은 비가 내린다는 그곳에서, 고흐는 햇살이 비추는 자연이 만들어낸 화려한 세계를 발견한다. 그것은 모네가 천착했던 색채와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모네가 색의 혼합이 아닌 병렬을 통해 채도를 낮추지 않으면서 높은 명도의 맑은 색을 썼다면, 고흐는 과감한 원색으로 높은 명도와 동시에 높은 채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모네가 다루지 않은 세계를 다루었는데, 그것은 바로 '밤의 색'이었다.


모네는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저녁식사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정원과 거대한 저택을 소유한 대가였던 그는, 여느 유명인사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정원과 저녁 식탁을 유명인사로 채우지 않았다. 저녁은 초대 없이 일찍 식사하고 다음날을 위해, 더 많은 '낮'의 작업시간을 갖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모네에게 '밤'은 색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모네가 숨을 거두고 안치되었을 때, 모네의 얼굴은 검은 천으로 덮여있었다. 모네의 절친한 벗이자 프랑스의 총리를 지낸 죠르주 클레망소는 그 모습을 보고, 그 검은 천을 거두고 꽃이 그려진 천을 덮으며, "모네에게 검은색은 없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빛의 조화로 명도를 아우르고 채도를 건드리지 않던 모네에게도, 원색의 혼합을 통한 작업에 대한 욕구는 존재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모네가 그린 지베르니 정원의 일본식 다리를 그린인데, 흥미롭게도, 이 그림은 붉은빛으로, 마치 불타는 다리를 그려놓았다.


images (55).jpg 사진 출처 : https://mbiz.heraldcorp.com/article/2969878


백내장으로 대상을 잘 볼 수 없었던 화가가 '기억'에 의존해 그렸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모네는 불에 타는 듯한 색채들의 향연에서, 다른 어떤 세계, 어떤 다음 단계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길을 모네는 택하지 않았다. 친구였던 클레멍소와 수양딸인 블랑쉬의 권유로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한 모네는, '인상파의 시스틴 성당화'라고 불리는 현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수련 연작을 완성하고 떠난다. 그렇게 밝은 색채의 그의 작품이 모네의 마지막 발자취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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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 강한 남프랑스는, '밤의 색'도 강했다. 밤의 컬러는 '야경'일수록 더 강했고, 이것은 고흐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고흐는 이러한 과정을 세세히 적어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이야기한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서신들이 단지 일상적 '안부'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고흐는 모든 창작의 과정과 고민 그리고 에스키스까지 테오와 공유했다.


한때, 파리의 스페인 관광청 홍보 문구가 "블랙(검은색)이 컬러가 되는 나라"였다.

정말 잘 만든 카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타는 남유럽의 열정을, 검은 소의 투우와 붉은 주단의 플라멩코의 한 장면을 그대로 떠오르게 하는 그런 카피라이팅이었다. 그런 열정을 고흐는 아를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렇게, 너무나 사랑받는 밤의 카페 그림이 탄생한다.


ArtistVincent van Gogh Year1888 Catalogue F467 JH1580 MediumOil on canvas Dimensions80.7 cm × 65.3 cm (31.8 in × 25.7 in) Location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사흘 연속으로 밤에 그림을 그리고 낮에 잠을 잤어,

난 자주 생각해,

밤이 낮보다,

더 생생하고 풍부한 색을 지녔다고..." (533번 편지) -1988년 9월 8일 , 아를에서-


그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네덜란드 시절의 수많은 습작들과 파리 시절의 그림까지 고흐는 '밝은 색'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빛이 존재했어도 '볼 수 없었다.' 네덜란드 출신이었던 고흐가,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 램브란트를 지척에 두고도 '밤의 빛'을 발견하지 못했다. 앞에 있었으나, 고흐 눈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때가 아니었던 것일까? 어둠 속에서 빛나던 렘브란트가 발산했던 '빛'의 향연을, 고흐는 네덜란드가 아닌, 암스테르담이 아닌, 프랑스 남쪽, 아를에 와서야 만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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