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을 모르고 지나가는구나 생각했지만, 결국 만나고 말았다.
한두 해가 지나니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깨부터 저린 통증이 팔꿈치로 손목으로 내려왔다.
새삼, 내가 너무 오랫동안 오른팔만이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 국립미대에 입학한 후배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첫 드로잉 시간에 한국에서 배운 입시데생실력을 마음껏 뽐냈는데,
그 모습을 본 데생 선생은 "네 오른팔을 잘라버려라"라고 호통쳤다는 것이다.
익숙하고 잘하는 손으로 그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팔을 자를 수 없으니, 그 후배는 오른 판을 묶고 왼손으로 그렸다고 했다.
오른손이 팔꿈치가 그리고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며,
오른팔을 늘어뜨리고, 왼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잘 그려지는 손으로 그린 것도,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다.
대상을 똑같이 그린 것이 잘 그린 것인지, 내가 생각한 대로 그려진 것이 잘 그려진 것인지,
그것 역시도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많이 그린 것은 아쉬웠지만, 그저 시간이고, 양일뿐이었다.
오른손을 쉬게 하고 왼손과 만나며,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순간과 만나며,
기대하지 않은 결과들과도 만난다,
익숙한 오른손으로 그린 그 많은 것들이,
어쩌면 답을 너무 일찍 알았다는 착각은 아니었는지...
답을 아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로버트 윌슨의 말도 떠오르고,
알 수 없는 것이 창작의 과정이라는 아감벤의 견해도 떠오른다.
아래로 내려뜨려서 쉬고 있던 오른손이 올라와서,
익숙지 않은 왼손이 그리느라 움직이던 종이를 잡아준다.
마냥 쉬고 있기 미안했나 보다.
작게나마 거들며,
그렇게 오른손도 왼손을 만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Etk1kdY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