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본 세상 -죽음의 죽음 (2)
"어릴 적 봤던 그 화려한 궁은 허상이었어.
늘 사람은 바글거렸지만,
궁은 외로웠다.
그 외로움에 지쳐 그렇게들 시기와 질투가 있었을 게야.
어여삐 여기거라.
불쌍히 여겨.
네가 원칙을 지키고 싶은 만큼 사람들을 어여삐 여겨.
그게 내가 너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말이다." - 드라마 대장금 중에서 정상궁의 말.(1)
대장금에서 정상궁은, 궁내의 질투와 암투를 두고,
"모두들 외로워서 그랬을 거이야"라고 말하며, 최고상궁이 된 한상궁에게 모두 안아주라고 조언한다.
그 말에 따라 한상궁은 모든 권력을 쥐고도,
비리로 엮여있던, 최상궁과 그 세력, 그이고 연루된 상궁과 나인들까지, 포용한다.
"이번엔 덮겠소."(2)
비리를 적발하고도 한상궁은 이렇게 말하며,
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기 때문이오"라고 덧붙인다.
한상궁의 취지에 감복한 비리세력들은 이내 고분고분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다시 유배지에서 돌아온 비리세력의 수장 최상궁이 벌인 모함에 의해,
한상궁은 결국 죽임을 당한다. 암살이 아닌 당시 공권력의 고문에 의한 죽음이었다.
대장금의 말미엔 최상궁도 모든 비리와 범죄혐의가 밝혀지며 죽는다.
50회를 넘기는 드라마 내내 최상궁은 장금이를 죽이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그 드라마를 보며,
장금이가 살아남기를, 권선징악이 이루어지기를 모든 시청자들이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똑같은 일이 현실에서 더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분노한 만큼도 분노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현실을 무뎌지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이미 드라마를 통해 소비해 버려서 현실에 분노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사람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다.
대장금에서 장금이를 죽이려 그렇게 몰려다니던 사람들처럼,
내란의 밤에 환하게 웃으며 내란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풀어주면, 그들은 다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제는 몇몇 정치인의 목숨이 달린 일이 아니라 국민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는, 드라마 속의 인물을 죽이는데 그치지만,
현실에서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서의 무능과 방관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반성조차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극우의 문제는 이념도 이념이지만, 그것보다 집권 능력이다.
코로나 때 헝가리, 브라질, 아탈리아, 등 극우 정부가 집권한 나라는 하나같이 대응이 미숙했다.
무능과 무감각까지 더해지면, 한두 사람의 생명을 넘어서서 전 국민들의 인식에 변화가 온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식이 생긴다.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하면, 큰 사건이 발생한다. 나치는 그렇게 등장했다.
안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은 현장을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는 자가 대통령이었고
여전히 수도 서울의 시장이다.
그들의 관할 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들이 관리하는데, 국민이 죽든 말든 상관할까?
실제로 아무 생각 없이 퇴근했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곧 핼러윈이다.
9월 11일에 태어난 아이들이 평생 생일을 기쁘게 맞이하기 어렵듯이,
9월 11일에, 10월 31일에 가족을 잃은 이들에겐, 그날은 축재가 아니라 슬픈 기일,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죽음이 아무렇지 않게 다루어지는,
죽음이 죽은 사회와 시대에서,
유족들은 늘,
한 번 더 상처받는다.
우리 모두 죽는다.
우리 모두의 죽음이 외면당하지 않도록,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한 번 더 기억하는 것,
죽음이 죽음으로 또다시 내몰리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이 무서운 사회와 세상을 덜 외롭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정상궁의 말씀이 맞았다.
모두 외로워서 그런 것 일 거라고, 외로워서 돈과 권력으로 그 허전함을 채우려 그랬다고.
그 말씀, 백번 알겠다.
그러나,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내란은 멈추어저야 하고 벌은 내려져야 한다.
내란에 동조하고 물들어버린 사법부까지,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그들은 멈추어지고, 단죄받아야 한다.
그것이 또 다른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일을 막는 길이다.
무도한 이들을 벌줘야,
무고한 이들을 지킬 수 있다.
(1) 궁은 외로웠다. - 1;29;37
(2) 이번만은 덮겠소ㅡ 2;19;16
https://www.youtube.com/watch?v=QGcnAI7bCDc&list=PLOBbhydezQbdmNy-20wSeMoNdZ5Qj7KyF&index=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