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6년 1월 6일
그려도 그려도, 같고도 다른 것이 사람의 얼굴이었다. 희로애락 네 가지 정도일 텐데 모두 달랐고, 분노 하나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슬픔은 늘 같은 빛깔인데, 볼떄마다 늘 그 진함은 처음 같았다.
CES 소비자 가전 전시회가 라스베이거스에서 한창이다. 몇 년 전에 그저 재벌 회장들의 방문소식 정도가 화재였지만, 물론 올해도 잭슨황의 동선을 다루는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 CES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박람회라고 홍보한다.
몰려오는 신기술과 본궤도에 올라선 인공지능이 만나, 무서운 속도감과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넘어서-이야기하는 동안 세상은 변한다.-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올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것은 '로봇 강아지'였다. 인간이, 사회가 얼마나 외로워지고 있는지, 눈에 띄게 외로워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첨단기술에 관한 번쩍이는 신기술을 보다가 다시 볼펜을 들고 사람을 그린다.
마치 라스코 동굴벽화에 들어앉아있는 것 같이 아주 오래된 원시인이 되는 느낌, 그리려고 올려둔 것은 사람의 얼굴, 오늘도 울부짖는 얼굴이다.
왜 이렇게 사람의 얼굴, 인간의 얼굴을 자주 그리게 될까.
사람의 얼굴, 우리의 얼굴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잡혀간 마두로 대통령과, 미국의 저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해, 누군가는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남미의 브라질의 시위대를 보았다.
아무리 독재자라고 해도, 미국이 잡아가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이 저질러지는 세상에서, '내 계산'이 아닌 계산으로 풀리지 않는 일을 위해 나선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박구용 교수의 말처럼, '생각'은 계산이 불가능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계산'과 더 빠른 계산으로 잘살기 바쁜 시대에, 나잘 사는 계산이 아닌 '생각'을 행동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얼굴을 그린다.
ps
초상권의 문제는 없을 듯하다. 닮게 그리지 못해서 영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차피 닮게 그리고픈 마음은 없었다. 왼손을 쓰고부턴, 닮는 것보다. 그 표정의 내용이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결과로 그 표정을 담는 것이 더 흥미로왔다. 저 분노를 저 열정을..
말러 2번, 아바도의 루체른 연주를 들으며 작업했다. 올해 들어 일주일에 한곡씩 말러를 동행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러가 들리는 것은, 나이가 들어야 소주맛을 제대로 아는 것과 같아 보였다.
어릴 적엔 그렇게 쓰던 소주가 어른이 되면 달아지는 것처럼, 어릴 적엔 어렵던 말러가. 나이 드니 달콤하다.
소주맛이 달다면,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는 뜻이라는 이태원 클래스 주인공 박새로이 아버지의 말이 생각난다. 말러가 달콤한 것이 내가 생을 열심히 살아온 때문이기를 염치없이 바라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3ZrV24Lt0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