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본 세상
"이거 한번 들어봐"
전화기를 스피커에 가져다 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레코드 가게 주인집 전화였다.
잠시 음악을 듣던 친구는 말했다.
"만만치 않은데? 내일 가져와봐."
"아니, 싫어!"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싫다고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가져가면 분명 빌려달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면 못 돌려받는 경우가 다반사, 경쟁적으로 판을 모으던 중학생 시절이었다.
음악평론가 김갑수 선생께서 불금쇼에서 이야기하던 그 모습과 같았다.
그때 우리들에겐 한 가지 불문율이 있었는데, 그것은,
재킷이 멋진 음반일수록 좋은 음악이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감성을 가진 사람이 시각적 감각이 없을 리가 없다.
비틀스의 존래넌이 오노요코와 대화가 될 정도였던 것도, 또 비틀스의 서전 페퍼 같은 앨범의 재킷도,
웬만한 현대미술을 능가하는 작품들이다. 에비로드의 사진만 봐도 그렇다.
핑크 플로이드는 또 어떤가, 그 어떤 설치 미술 스펙터클보다 전위적이 과 압도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그날 우연히 찾은 그 음반도 재킷이 흥미로와서 집은 것이었는데,
주인공이 심지어 존 콜트레인이었다.
난 그렇게 존 콜트레인을 음악이 아닌 재킷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천만을 넘은 왕사남이 공개한 포스터는 예술이었다.
단 한 장의 사잔, 한 장면으로,
단종의 고독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천만 관객의 심금이 어떻게 울렸는지 그려지는 포스터였다.
물론, 너무 빨리 제작했나? 손끝에 흐르는 물줄기가 너무 과한 것은 옥에 티였지만.
텅 빈 구도, 거친 듯 거칠지 않은 글씨체까지,
천만을 넘긴 영화다운 포스터였다.
영화도, 포스터가 좋으면 영화도 좋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 감각이 어디 가겠는가?
유시민 작가의 분석처럼 C급 밑에 B급 A급 인재는 가지 않는다.
좋지 않은 감독아래 좋은 미술감독이 있을리 없다.
윤석열 시절만 봐도 그렇다. 행사에 로고하나조차 봐줄 것이 없었다.
모든 연출은 허술했고, 유치했다.
김건희의 연출사진은 차라리 엽기나 전위 공포 예술로 가면 가능성이 더 있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내란을 지지했던 세력은 여지없지 같은 수준이다.
건국 어쩌는구나, 준스 어쩌구 하는 다큐 모두 수준 이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극우들은 조악하고 유치하다.
코로나에 대처하는 수준만큼 문화적 감각도 떨어진다.
유일하게 위험하게 미적감각이 뛰어났던 것은 히틀러였다.
그는 위험했다. 무대연출과 강연은 게르만 민족을 마취시켰다.
다행히 우리 극우는 무능하고 무지하며 게으르다. 천만다행이다.
문화예술을 대하는 수준도 천박하다.
대한민국의 이승만 전두환을 이어 국힘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의 이러한 천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BTS를 대하는 태도였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을 '노리개' 취급하는 무식과 용기는, 그들이 왜 사라져야 하는 집단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액스포 유치 전의 참담한 결과는 덤이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72016032260771
왕사남의 성공의 첫 번째 의미는 철학자 박구용교수의 지적처럼, 우리가 무언가 마음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열어준데 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이런 방향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박고수는 덭붙인다. 왕사남을 비판할 지점은 많지만, 지금은 응원할 시기라고.
정치의 극한 대립으로 서로 죽일 듯 싸우는 분위기에서. 쓸쓸히 죽어간 한 어린 왕의 이야기는 잠들어있던 보송보송한 감정을 우리 속에서 잠시 꺠워주었고, 그렇게 돌아보면 우린 모두 사랑하고 아껴주는 좋은 사람들, 시민들이다. 잠시 국힘 같은 집단을 지지하는 분들도, '슬픔'을 일꺠워 주는 '영화'를 통해, 오늘의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잊히지 않는 세월호의 아픔을 다시금 돌아볼 우리의 '감각'을 잠든 그 '마음'을 다시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한명회를 향해 분노하듯 불의한 내란세력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를 다시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공로가 아닐까. 아무 힘이 없어 보이는 예술은 그렇게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감독이 장항준인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잘 나가는 아내옆에서 늘 밝은 남편이었던 것은,
아내가 돈으로 갑질을 하지 않았고,
남편은 잘 나가는 아내에게 기죽지 않았다는 것인데,
수많은 기죽는 남자들에게 '희망봉'같은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오르지 못하더라도, 바라만 보는 것도 없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고개를 들어야 하늘이 보인다.
다시 박구용의 분석처럼,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없수이 , 당연 시리 없수이 여기는 시대에
오랫동안 남편주부로서 긴 시간을 밝게 지나온 장항준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가진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고 서로를 바라보았을 두 부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https://www.youtube.com/watch?v=pEBiyaGh6r8
좋은 세상이다.
유튜브에서 그냥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OJTD8eSgOjw
두 번째 곡,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말이 아닌 음악으로 어쩌면 저렇게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악, 좋은 음악은 분명 언어를 넘어선곳에서, 언어완 상관없이 '감동'을 준다...
https://www.youtube.com/watch?v=G4cQkkObY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