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2 10월 8일
현대사회에서 죽음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죽음이 단순히 숫자로 된 뉴스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와 같은 화면에,
다소 침통한 표정과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전하는
몇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라는 단순한 문장으로 전해지는 죽음은,
정말 죽음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죽음은 누군가를 영원히 못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잃는 것이다.
무덤에 힘없이 손을 얹어놓은 유족의 모습에서
그날의 축구장의 참사가 만든 죽음의 그림자를 보았다.
죽음은 늘 그 실체는 사라지고,
검은 그림자만을 남긴다.
가족들은 그 그림자를 죽는 날까지 지우지 못하고
문신처럼 흔적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한다.
레지스 드브레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침팬지가 죽음을 대하는 일화를 전한다.
어미 침팬지는 죽은 아이 침팬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치 물건처럼 버려두고 다른 침팬지에게로 향한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죽은 자식을 잃은 가족을 끝끝내 떠나보내지 못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은 아니지만,
신은 인간에게 시간을 인식하게 해 주었고, 그로써 기억을 주었으며, 죽음을 알게 했다.
인간의 죽음을 의미 있고, 무게 있게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에 무게가 생긴다.
그리고 거기에서 공감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의 아픔을 느끼고 타인의 아픔을 가늠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된다.
이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그저 죽은 아이를 물건 취급하던 침팬지와 같다.
세월호의 유족에게 죽은 자식은 땅에 묻는 거라며 훈계조로 이야기하던 정치인과 정당 있었다.
그런 정치인들이 지지받는 사회에선, 그런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사람이 사람 취급을 받지 않고, 죽음은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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