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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Dec 27. 2016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국민이 국가에게 던지는 절규, "Who are you!"

'영화'가 존재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를 충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세모녀 사건을 비롯해 삶 바깥으로 '밀려난' 수많은 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생각들을 모두 담은 눈물을 흘리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영화였다.

감히 올 한 해를 전부 돌이켜, 최고의 영화였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떠올랐다. 장르나 메시지에 있어 접점이 거의 없지만 나는 두 영화가 모두 국가에게 '나는 인간이다, 나는 시민이다, 너는 누구냐'고 절규하고 있다고 느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 그리고 무기력해진 시민들로 이뤄진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한 인물의 기묘한 투쟁을 담고 있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주인공 'V'는 "나는 그저 인간이 되려는 것 뿐이오."라고 말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남긴다. 


'브이 포 벤데타'가 자유를 억압하는 비대한 국가에 분노하고, 방관과 무기력으로 일관하는 시민들에게 일침을 가한다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시민들을 생계 바깥으로 내몰고 심지어 그 과정을 통해 근원적인 존엄성을 위협하는 무능한 국가에 호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단락은 줄거리 요약으로,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40년을 성실히 목수로 살아온 주인공 댄, 그는 심장에 문제가 생겨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게 되고, 국가에 질병수당을 요청한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닌 '의료전문가'라는 여자는 계속해서 심장과 상관 없는 질문만 쏟아내고 댄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하나씩 대답을 한다. 댄이 심장에 관한 내용으로 좀 넘어가자고 해도 거듭해서 여자는 답답한 목소리로 절차를 준수하라고 하는데 그저 전형적인 관료주의적이고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일처리방식을 보여준다.

원칙을 고수하고 계산적으로, 위계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관료주의는 흔히 '비효율적이지만 일사불란하고 오차가 적다'는 식으로 그려지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 사는 세상은 전혀 그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일까, 관료주의는 항상 어마어마한 착오를 쏟아낸다. 

댄은 질병수당 신청을 거절당했고, 그 원인을 찾으려해도 전화 문의는 하늘의 별 따기였으며, 모든 절차와 과정은 단지 거추장스러움을 넘어 생계와 자존감을 위협했다. 직접 문의하러 찾아간 지원센터에서, 댄은 케이티를 만나게 된다. 



케이티는 두 아이의 엄마로, 길을 잃어 조금 지각한 것 때문에 생계수당에 제재를 받게 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댄은 나서서 저항해보지만 결국 케이티와 댄, 그리고 케이티의 아이들은 바깥으로 쫓겨난다.

이후 댄은 케이티의 가족을 진심으로 보듬으며 도움을 주고 케이티와 아이들 역시 댄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 정부의 무능과 무관심으로 그들은 점차 궁지에 몰리고, 케이티는 극단적 선택들을 이어가고 댄은 결국 정부를 상대로 한 항소를 앞두고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영화는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담담하게 다니엘과 케이티가족의 웃음과 고통을 그려내는데, 그 담백함 속에 내포된 충격이 어마어마했다. 

식료품을 살 돈이 부족해 아이들과 댄의 밥을 차리고 청사과를 베어무는 케이티.

식품 배급을 받다가 허기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콩조림 캔을 따 입에 우겨넣다가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흘리는 케이티. 케이티는 "우리 엄마가 이 모습을 보면..."이라 말하며 눈물을 쏟는다. 냉엄한 세상에서 울타리라고는 그 눈물 쏟는 엄마 뿐인 어린 아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그 소문이 케이티 딸 학교에 퍼지고, 놀림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주저하며 꺼내는 딸아이, 그 애에게 해 줄 것이라고는 안아주고 함께 잠드는 일 뿐인 엄마.

마트에서 도둑질을 하다 걸린 케이티의 가방에서 경관이 꺼내 책상에 던져놓는 생리대.......

학업을 계속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밑바닥을 드러내고 그 모습을 다니엘에게 들키고 도망치는 케이티. 개인적으로 케이티라는 인물로 그려낸 이 모습들이 정말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기분이었다. 

이런 장면들이 담담하게 스크린에 비춰질 때마다 줄지어 앉은 관객들은 부스럭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댄이 센터에서 또 한 번 쫓겨나고, 분노한 댄은 센터 벽면에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죽기 전에 항소 요구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구린 통화연결음 좀 바꿔라' 는 글을 쓴다.

이에 박수를 치고 동조하는 많은 시민들. 곧 경찰이 출동해 댄을 연행해가는데, 이 때 시민들이 외친다.

Who are you! Who are you!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시민이 국가에게 외친다. 너희는 누구냐고. 보호해야 할 땐 침묵과 무능으로 일관하다가 권리를 주장하면 억압하는 너희는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 것이냐고. 



뿐만 아니라 결말의 임팩트 역시 어마어마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세련된 방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마지막 댄의 편지를 케이티가 낭독하는 부분에서,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담백하고 명백하게 제시된다.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엘리트의식이나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국가가, 사회가 애초에 왜 성립되었으며 유지될 수 있는 근간이 무엇인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인권은 진보와 보수로 논할 문제가 아니다. 막연한 인본주의나 감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국가는 시민을 위해 시민들이 결성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집단 아닌가.

기본에 충실한 국가, 세계가 되길, 자연이 보여주는 상생의 길을 인간도 걸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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