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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선 Sep 22. 2020

내게는 너무 멀고도 험한 - 운전면허의 길 3

도로주행 - 지독한 길치 토끼는 결승선을 찾지 못해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기능시험을 합격하고, 나는 마침내 도로로 나설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학원에서 기본으로 이수할 수 있는 도로주행 수업은 6시간. 기능 수업 4시간 못지않게 야박한 시간이지만, 기능 시험 합격 후 받을 수 있었던 연습면허가 있으니 개인적으로도 좋은 선생님만 있으면 연습이 가능하다는 점이 희망적이라면 희망적이었다. 내게는 면허 시험이라는 대장정의 전 과정을 함께하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면서 가끔은 놀라운 용기를, 가끔은 신선한 충격을 꾸준히 던져주는 남자 친구가 옆에 있었다. 나머지 학습을 도와줄 방과 후 선생님도 정해져 있겠다, 꽤나 가벼운 마음으로 첫 수업에 임했다. 수업은 2시간씩 총 3번, 주말에 진행됐다.


이번에도 세 번의 수업 강사님이 각각 다른 분이셨는데, 역시나 살짝 오버스러울 정도로 예의만 바르게 행동했더니 별 문제는 없었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끔찍이도 안 되는 인간이라 옆에서 잡담이라도 시작하실라치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아~”, “네~”, “오~”의 세 가지 단답을 적절히 섞어 쓰며 잡담 중 섞여 나오는 가르침만 쏙쏙 골라내면 그런대로 할 만했다. 세 분은 전부 묘하게 ‘너의 실력은 형편없지만 지금이라도 나를 만나 다행이다’의 뉘앙스를 가지고 가르치셨는데, 별로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쳐드리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 돈 내고 강사님들 기분 맞춰드리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쓸 데 없는 일로 서로 기분 상하는 건 더 싫었고 그로 인해 내가 조금이라도 배움의 기회를 잃는 건 더 싫었다. 아무튼 6시간의 수업은 매우 무난했다는 이야기.


가장 큰 걱정은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점이었다. 보통 수준의(?) 길 찾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고작 신호 서너 번 건너면 끝나는 도로주행 코스에 길을 못 찾는다는 게 웬 말인가 싶겠지만,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는 걸 믿어줘야 한다.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오히려 운전이야 하다 보면 늘겠지라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수업에 임했는데, 길 못 찾는 건 내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컸다. 시험 전까지 열심히 돌려 봤던 주행 영상이 효과적이었다. 코스별로 주행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더디지만 천천히 머릿속에 들어왔다.


드디어 시험 날, 나는 인상도 말투도 너무나 부드러운 나이 지긋하신 검정관님과 동승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다른 수험생들과 합승하거나 하지 않아서 미리 운전 감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나에게는 쓸 데 없는 긴장을 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태블릿 PC가 랜덤으로 코스를 정해주고, 천천히 주행을 시작했다. 불합격과 생존의 두려움이 합쳐져서 극강의 공포가 꼬리를 물었지만, 검정관님의 차분한 목소리와 태도 덕에 나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원래 다 그래요”라는 한 마디가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그리고 감점 요소가 생길 때마다 “지금 이런 행동 때문에 몇 점 감점됩니다”라고 오히려 알려 주시니까 괜스레 눈치를 보거나 겁을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름 순탄하게 코스를 마칠 때쯤 되었는데... 분명 머릿속에 모든 코스가 다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머릿속에 지도가 엉켜버렸는지, 나는 분명 한 번 더 유턴을 해야 완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승선인 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닌 학원은 학원 내부까지 들어가야 완주였는데, 간판은 눈에 들어오고, 차선은 미리 바꿔두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나는 꽤 높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결승선을 쌩 하니 지나치고 말았다.


검정관님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신 채 차를 세우라고 하셨다. 결승선을 지나쳐버리면 태블릿이 그냥 꺼져버려서 실격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검정관님 경력에 나로 인해 새로운 경험이 추가되었다는 기묘한 뿌듯함과 완주 코 앞까지 와서 실격되었다는 아쉬움이 공존했다. 수험표를 다시 받아 들고 사무실로 가서 다음 시험을 접수했다. 거듭되는 데자뷔... 하지만 남들보다 더디고 미숙할지라도 꾸준히 도전하는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금세 돌아온 두 번째 시험 날. 저번과 같은 검정관님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시험장에 도착했다. 내 작은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저번과 같이 시험장에 들어오신 두 분 중 나머지 한 분과 동승하게 되었다. 저번 검정관님에 비해 한층 무뚝뚝하셨지만, 그래도 주행 내내 침착한 목소리로 안심을 시켜 주셨다. 가까스로 시험을 마치고 이번에는 무사히 학원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다 서툴죠. 그래도 꽤 잘하는 편이에요. 이제 도로 나가면 훨씬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을 거예요. 안전 운전하세요.” 검정관님은 합격이라는 말에 신나 하는 나에게 차분히 말씀하셨다. 그 날 하루만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험을 보았고, 아마 코로나 19 발병 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 테고, 검정관님은 지금까지 수도 없는 수험생들을 만났을 텐데. 본인이 합격을 시킨 이들이 이제 도로 위로 나가게 되는 상황에서, 한 명 한 명에게 그런 따스한 말을 건넸을 생각을 하니 주책맞게도 마음이 시큰해졌다. 반복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일, 그리고 그 루틴 속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상냥한 말을 건네는 일, 그런 것들은 참 가장 쉬워 보이면서도 놀라운 의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나를 스쳐간 다섯 분의 강사님과 두 분의 검정관님이 기울여준 잠깐의 관심과 호의 섞인 조언들, 학원을 오가는 길 아무런 불만 없이 나를 태워주고 기다려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운전 학원에 쏟아부은 아까운 내 돈... 마지막으로 게으른 몸을 이끌고 이 모든 과정을 아무런 강요 없이 해낸 나의 작은 결심들을 생각하며, 나의 29년 무면허 인생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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