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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수 Mar 24. 2020

<착취도시, 서울> 서평

우리에게 관찰이 필요한 이유

“잠만잘분 017-xxx-xxxx”

고등학교 시절, 하교할 때마다 보이던 문구였다. 지워지지 않는 유성매직으로 담벼락과 전봇대 여기저기 써있던 전화번호였다. 그 전화번호가 유달리 많이 쓰여있던 집이 있었다. 낡고 허름해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도심 한복판에 폐가가 있던 것도 신기해서 친구들과 담벼락 너머로 기웃거리기도 했다. 가끔 인기척이 들리면 무서워서 도망쳤다. 그 때는 폐가에 무단으로 기거하는 노숙자인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쪽방촌에 봉사를 갔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익숙한 문구는 그곳에도 있었다. “잠자리만 제공 010-xxxx-xxxx” 활동가 선생님께 저런 멘트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활동가 선생님께서는 쪽방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고문구라고 하셨다. 몸 하나만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거주지가 아닌 “잠만 자는 공간”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대중매체나 봉사활동만으로 접하던 쪽방이 내 주변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학을 가고 나서도 보이던 그 집이 측은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쪽방과 동네 주변을 살펴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뜬금없는 곳에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깔끔했지만 꽤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곳이었다. 동네 슈퍼아저씨에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여쭤봤더니, 동네가 개발되기 전에 쪽방촌과 같던 단칸방들이 있었고, 그곳에는 수도시설이 없어서 공용 수도시설을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라고 설명하셨다. 동네는 개발되어 이제 수도가 안들어가는 곳은 없지만, 정부 소유였던 화장실만 남아서 쪽방 사람들의 유일한 화장실로 사용된다고 했다. 봉사가 필요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이라고 여겼던 쪽방을 다시 접한 건 이사하기 위해서 찾은 부동산에서 였다.

부동산 아주머니와 상담을 하던 중, 동네 쪽방이 매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없고 재개발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대답은 달랐다. “쪽방이 얼마나 알짜 현금 장사인데, 총각 돈이 있으면 사는 것도 괜찮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자세히 쪽방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하셨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받아라, 통장을 저당 잡아야 한다, 방세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만큼만 받아야 한다.’ 등등 이었다. 가난도 자본가에게 비즈니스 모델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착취도시, 서울”은 잊고 있던 쪽방의 기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그곳에 지내는 사람과 직접 소통해본 적은 없지만, 쪽방촌 취재기를 통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볼 수 있었다. 희망은 없이 작은 공간에서 세월을 기다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좌절을 느꼈다. 쪽방 소유자들은 대대로 쪽방을 물려주면서 부를 이어가는데, 쪽방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사람의 “고혈”을 빨아먹는 행위였다. 다시금 토지공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러한 비윤리적인 자본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탈법 비즈니스는 사람들의 가장 취약한 점을 공략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에게,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협박을 하면서, 불법적인 폭리를 취한다. “쪽방이라도 있어야지, 저들도 버티지.”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잘 쓰여진 기사는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기자가 사비 60만원을 들여가면서 등기부등본을 뒤지고, 실소유주를 추적하는 모습에서 셜록 홈즈를 읽는 몰입도를 주었다. 저자와 함께 쪽방을 취재하면서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쪽방을 조망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기사로 우리에게 울림을 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착취의 구조와 그 안에서 힘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른 울림으로써 사회를 깊이 관찰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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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글항아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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