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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HL 창작 시

산책 11

THL 창작 시(詩) #179 by The Happy Letter

by The Happy Letter


산책 11



비가 온다

빗물 머금은 풀잎 젖은 흙바닥 보니

아마 새벽부터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나 보다


지나간 여름 그리워해도

이미 때는 지났다

무릇 계절 따라 지나간 인연들

아무도 이리저리 기다려 주지 않으니

불쑥 다가온 가을 기운에

그저 놀라지만 마라

구질구질한 집착(執着)도

어설픈 마음의 준비도 어울리지 않는 사치일 뿐


가을비가 온다

그 무심한 세월(歲月) 그리워해도

이미 때는 지났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난여름 우연히 만난 선인(善人)을 그리워하듯

이 계절 앞에 가면(假面)없는 얼굴을 만나는 일뿐

그리하여 빗물 머금은 풀잎에도 슬퍼하지 않고

익어가는 열매처럼 조금씩 늙어가는 일뿐



by The Happy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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