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옛적의 일입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일 뿐 특정 직업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 둡니다.
그날 나는 급히 고속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 가야 할 일이 생겨 서둘러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승객들이 많지 않아 자리는 잡을 수 있었는데 버스 기사님의 운전석 바로 뒷자리였다. 요즘은 따로 분리된 가림막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그 버스엔 투명한 강화 유리 같은 것만 낮게 설치되어 있어서 앞에 있는 운전석이 훤히 다 보이는 구조였다.
출발 시각이 되자 버스에 탑승한 승객의 인원수를 확인한 후 기사님은 운전석에 앉기 전에 나에게 환한 웃음으로 “이거 하나 드세요.”라며 음료수 하나를 손에 건넸다.
순간 잠깐 고민했다.
낯선 사람이 주는 것은 절대로 함부로 받아서는 안된다, 왜,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나오잖아, 차에서 누가 건네주는 음료수 잘못 받아 마셨다가 의식을 잃고 범행에 희생되는 장면 등 그 짧은 순간에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지금이나 그때나 사회는 갈수록 어지럽고 흉흉해져 가고 온갖 흉악한 사건사고 뉴스를 자주 접하는지라 나도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나는 급하게 오느라 터미널 매점에서 아무것도 사 오지 못했고 마침 목도 좀 말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자한 미소를 장착하고 웃으며 건네주는 그 버스 기사의 음료수를 얼떨결에 덜렁 받고야 말았다.
아,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헐, 그때 그 순간부터 그 운전기사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바로 뒷자리에 앉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날씨 많이 더워졌지요부터 시작해서 혹시 어디 가시는지 물어봐도 되느냐 등등. 원래 버스 승객이 운전 중인 기사에게 말을 걸면 위험하니 운전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은 많이 접했지만 운전기사가 버스 승객에게 말을 붙여오는 경우는 난생처음이라 몹시 당혹스러웠다.
나는 처음엔 그냥 귀에 이어폰 꽂고 눈감아 버리려고 했다. 왜냐하면 전날 나는 잠을 거의 못 자서 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다른 승객들처럼- 눈을 좀 붙이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잣말 같은 이러쿵저러쿵하는 버스 기사의 말은 버스가 출발하고 한참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갑자기 순간 나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눈을 뜨고 앞을 보니 내가 듣지도 않고 대꾸도 하지 않는데 그 기사님은 그냥 혼자서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사님이 룸미러로 뒤를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이 네…, 아, 그래요? 네, 그럴 수 있죠…라며 짧게 몇 마디씩 건넸다. 하지만 그칠 듯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그의 ‘모놀로그’는 운전하며 가는 내내 계속 이어져 갔다.
그렇게 생판 안면부지顔面不知의 그 버스 기사님과 일방적인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느라(?) 한참 시간이 지났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천근만근 쏟아지는 무거운 졸음을 참느라 따갑기까지 한 눈을 한 번도 붙이지 못한 채 그대로 목적지에 도착하고 말았다.
버스가 목적지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니 내리는 나에게 버스 기사님이 겸연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실은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
아, 나는 그때 고민하지 말고 딱 잘라 거절하고 다 무시하고 그냥 눈감고 푹 잤어야 했는지 아니면 내가 그 버스 기사님과 버스 승객들을 모두 구한 것인지 독자(작가)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무척 궁금해진다.
P.S. 누구든 졸리면 처음부터 운전대steering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 졸음운전은 음주 운전 못지않게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