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적' 상상

그럼에도 응원하게 되는 이 마음은 다 비슷하니까

by 일구삼

야구를 좋아하다 보면 슬쩍슬쩍 다른 종목에 눈이 가기 마련이다. 은근히 어필해 오는 비슷한 연고지의 다른 종목 선수들이란. 그들은 같은 연고를 핑계로 혹은 국제대회의 대단한 성적을 명분으로 야구장에 시구를 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깟 공놀이'에 가지는 팬들의 마음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이기 때문에 다른 운동 종목에도 쉽게 마음이 간다. 이기면 좋고, 지면 화나고, 그럼에도 응원하게 되는 이 마음은 다 비슷하니까.


스포츠 업계로 취업을 준비하면서부터는 다른 운동 종목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다. 아무래도 한 가지 종목만 바라보고 취업을 준비하기엔 길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다양한 운동 지식을 쌓고 전반적인 관심을 유지해야 채용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다. 나 같은 경우에는 배구를 가장 먼저 좋아했고, 그다음에 야구를 좋아했기 때문에 두 분야에 대한 지식은 나름 빠삭하다. 하지만 농구는 집 앞 경기장에 한 번 가본 게 다고, 축구는 올림픽 때 대한민국 국민 1이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여러 구단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또 마음에 드는 직무에 지원하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축구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유튜브에 있는 '축구 입문자가 꼭 봐야 할 영상'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클립이 남아있는 국제 경기를 보고, 축구 예능을 찾아보는 순서였다. 마침 그 근처에 국가대표 경기가 있어 메모장을 켜두고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중계 화면 하나, 메모장 하나, 국가대표팀 라인업 창, 나무위키 창.... 못해도 4개 창을 띄워놓고 진짜 열공하면서 봤다. 실제로 직관 경기에 가서도 남들 다 즐기고 열광할 때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온갖 걸 메모했다. 전력분석원도 아닌 관객이 이렇게 축구 경기를 본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하나둘씩 운동 종목을 알게 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야구와 비교를 하게 된다. 내 첫 시작은 배구였는데도, 이상하게 모든 종목을 '야구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황희찬의 역전 골은 우리에게 '끝내기 만루홈런' 정도의 대단함으로 평가됐다. 불이 꺼지고 플래시가 반짝거리며 황희찬을 연호하다 아파트가 나와줘야... 마땅하나 그들의 세리머니도 꽤 멋졌다. 그 세리머니를 보고 '오 꽤 화려한 빠던이네.'라고 생각해 버렸지만.


패스 미스는 실책, 헛발질은 헛스윙, 골은 홈런... 이렇게 야구적으로 모든 걸 표현하는 나의 이 고집불통은 뭘까. 어떤 종목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야구는~'하며 비교하게 되는 심리는 뭘까. 며칠 전, 그렇게 벼락치기해 간 축구구단 면접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놀랍고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나의 미래가 그려졌다. 앞으로는 하루종일 축구를 보고, 축구를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해 달라고 온갖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런 와중에도 나의 어떤 고집은 죽지 않고 중간중간 피식 웃게 되는 '야구적' 상상을 하게 될지. 아마도 기분 좋게 이긴 어느 날의 경기엔 퇴근길에 나도 모르게 아파트를 열창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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