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도를 배우려고 한다
본격적인 장마가 온다. 지금도 창문을 열어놨더니 빗소리가 가득 찬다. 비는 이상하게 갑자기 한꺼번에 내려서, 소리로 확연히 구분된다. 꼭 음악을 켠 것 같이 조용하다가 순간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폭우가 올 때면 틀어둔 음악이 무색하게 빗소리 밖에 안 들린다. 비가 음악을 이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하나에 정신을 잃고 무력해지는 전자장비들의 나약함을 깨달을 때면 저절로 비가 내리는 걸 구경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도 지나고..., 할 일도 못하고..., 비는 나까지 무력하게 만드는구나.
아닌 게 아니라 비가 오면 보통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축축 처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이 아침인지 한낮인지 새벽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애매한 조도 아래 나도 되게 애매해진다. 좀처럼 열정을 찾지 못하고 비척거리게 된다.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다. 자꾸자꾸 미루게 되고 누워만 있고 싶다. 이게 다... 비 때문이라 생각하면 (물론 태생적 게으름이 밑받침되고 있겠지만,) 새삼 기후 환경이 삶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알게 된다.
이건 몇 번의 반복학습으로 깨달은 거다. 한여름에 날씨 무시하고 입고 싶은 옷 입고 나갔다가 5초 만에 후회하고, 빙판길에 산책하겠다고 나대다가 넘어질 뻔 한 경험들로. 기분이 안 좋다가도 살랑 부는 바람에 금세 회복하고, 세찬 바람엔 갑자기 울 것 같은 기분이 든 적도 있다. 난 내가 모든 걸 통제할 것처럼 굴지만 내가 가만히 있어도 마음대로 바뀌어 날 다르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한 치 앞의 나도 내가 감히 예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눅눅하고 덥지 않던 그날도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내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고, 감히 확언할 수 없고, 같은 결과물에 아주 좋은 평가나 나쁜 평가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에어컨 바람 아래 있던 사람은 귀 기울여 듣고, 창문 가까이 땀을 흘리던 사람은 집중을 못했을 수도 있겠지. 나도 너무 추워서 더 떨었으니까.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몸의 변화를 보며 난 태도를 배우려고 한다.
비가 너무 와서 우천중단이 된 경기는 중계 화면에 더그아웃에 앉아있는 선수들을 보여주곤 한다. 물 맞은 강아지처럼 그저 신나는 선수가 있는 반면, 꼭 울 것 같은 표정의 선수들도 있다. 눈으로 뚜렷한 변화를 목격할 때면 나는 안심한다. 칼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로봇 같은 선수들도 흔들리는데 내가 안 흔들리는 게 이상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우천 취소가 된다. 여태까지 했던 경기는 무효로 돌아가고, 경기를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거기 있던 선수, 코치진, 관중, 중계진, 방송사 스태프, 응원단 등 전부가 자리를 뜬다. 중계를 보던 사람들도 중계를 끈다. 아무리 많은 노력과 열의가 있더라도 비가 하는 일에는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