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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Oct 12. 2016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페친으로 세계일주_김수진

  얼마 전에 행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 교수는 사람은 타고난 성향에 따라 내성적인 사람보다 외향적인 사람이 약 50% 정도로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내성적인 사람들에겐 이 얼마나 불행한 통계적 수치인가. 태어난 순간부터 행복한 삶을 살 확률이 정해져있다니.

  외향적인 성격이 우대를 받고 내성적인 성격은 무시당하는 이 사회의 분위기가 만연하다. 어렸을 적부터 자식들을 좀 더 외향적인 성격으로 만들기 위해서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다. 성인들은 보다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갖기 위해 각종 성격개조 세미나를 기웃거린다.

  과연 우리는 꼭 성향을 개조해야만 할까? 내성적인 성격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사회는 외향적인 성격을 강요하는 걸까? 그리고 정말 그 교수의 말대로 외향적인 사람들이 행복할 확률이 높은 걸까? 이번에 만난 세계는 나에게 이런 의문을 심어주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그 누구보다 내성적이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 그 길에 서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수진. 그녀와의 만남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우연히 그녀가 자신의 SNS에 [우연, 선택,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봤다. 근데 우연스럽게도 요즘 나의 화두 또한 선택과 책임이었기 때문에 그 글을 굉장히 공감을 하며 읽었다. 잘 읽었다 생각하며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무심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게 인연이 돼서 마치 펜팔 친구마냥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 번쯤은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는 실제로 만나기로 했다. 한 번 만나고 나니 그녀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나는 그녀와 예외적으로 두 번이나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배우, 종양, 교육

  첫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나에게 준 세 단어였다.

  [배우] 나는 그녀가 시나 에세이를 쓰는 작가 아니면 작가를 희망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SNS는 보기 드물게 시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극단에서 또는 스크린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어릴 적부터 배우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은 연극과를 다니며 배우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종양] 그녀는 사랑니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가 턱의 신경에 커다란 종양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도 악성 종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신경을 자꾸 방해하는 바람에 제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술을 하면 예전과 같이 안면 근육을 자유롭게 쓰지 못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반인들에게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지 몰라도 배우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통보였다. 그녀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울며 고민했지만 결국 종양 제거 수술을 받게 되었다.

  [교육] 그녀는 자신이 연극을 하는 것 외에도 학생들에게 연극으로 교육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이상한 꿈을 강요하는 엉터리 진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을 진로 교육에 접목시켜 만들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인연처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저 세 단어만으로는 그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나 넘실 거리는 한강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인이 되고나서부터의 이야기는 대강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어렸을 적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성격이었길래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배우를 하고 있는지.


내성적


  이건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나에게 준 한 단어였다.

  "수진씨는 어릴 적엔 어떻게 살았어요?"

  "음. 전 정말 내성적인 학생이었어요. 제가 어느 정도로 내성적이었냐면요. 어릴 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정도였어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조용한 성격 탓에 괜히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런 학생이었어요."

  순간 속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남들 앞에서 자신을 표현해야하는 배우가, 내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조리 있게 말하고 있는 그녀가 내성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낯설다고 하면 충분히 낯설 수 있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 정말요? 믿기지가 않는데요. 근데 그런 성격에 배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국어 시간이었어요. 스스로가 글을 적고 그것을 발표하는 시간이었죠.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남들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한 건.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글을 적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근데 제 글을 읽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막 울면서 남들 앞에서 글을 읽다보니까 이상하게 맘이 후련한 거 있죠? 그때였던 것 같아요. 남들 앞에 서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 이후에도 여러 사건들 때문에 길을 조금 돌아가긴 했지만 전 지금도 배우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써 살아갈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써 살아가겠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조금은 수줍지만 매우 단단하게 느껴졌다. 겉으로 보면 여리고 깨져버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강한 진주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녀는 쾌활하고 말은 잘 하지만 딱 그 뿐인 친구들과는 다른, 내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근데요. 수진씨. 저번에 수술했다고 했잖아요. 요즘엔 어때요? 배우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어요?"

  "아직도 불편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아참. 제가 사진 보여드릴까요?"

  그녀는 갑자기 이야기를 하다 말고 핸드폰에 저장해놓은 사진을 나에게 보여줬다.

  

 

  "헐, 엄청 컸네요. 진짜."

  "수술을 하기 전까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제가 배우라고 하니까 의사 선생님도 그럼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말씀하셨죠. 턱의 신경에 걸려있는 종양을 떼어내고 나면 표정의 일부는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말에 정말 고민했죠. 정말 며칠을 펑펑 울었어요. 근데 이 종양 때문에 점점 더 불편해지더니 나중엔 귀까지 잘 안들리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수술을 했어요. 수술 후에는 정말 겨울왕국에 나오는 욜라프처럼 얼굴이 퉁퉁 부었었는데. 한 때 계속해서 배우를 못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교육쪽으로 아예 선회할까 생각도 했었구요. 근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수술 후의 이미지가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뭐 괜찮아요. 마크 러팔로 아시죠? 그 배우도 뇌종양 때문에 안면마비 장애까지 왔었대요. 근데 지금은 누구보다 멋있게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그녀를 다시 봤을 때,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이 걷고 있는,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서는 특히 그랬다. 그리고 그 길에서 행복 가득한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굳이 그런 것들을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꺼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빛을 발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와 악수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는데 그 그릇의 크기는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 사람에 따라 그릇에 담는 가치의 종류가 다를 뿐 그것의 옳고 그름은 없다는 생각. 단지 외향적, 내향적 성향을 가르는 것은 그 그릇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남들에게 드러내보이는 빈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보이는 빈도와 행복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는 생각.

  우연히 보게 된 그녀의 글, 무심코 보냈던 메시지 그리고 그녀를 만나겠다는 선택. 그 우연과 선택이 그녀와의 만남을 만들어냈고 내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새로운 세계를 만나 내 세계를 확장해나갈 생각을 하니 입가에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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