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 뿐인 세계일주의 시작
“내 꿈? 세계일주를 하는 거야. 그냥 관광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나라의 사람들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거야. 귀국하면 그 이야기들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청년들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거야.”
세계일주. 아마 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민국 청년들이 가장 많이 내뱉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나 또한 그랬다. 해외라곤 군대가기 전에 나홀로 일본여행 3박 4일, 개나 소나 다 간다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10개월이 전부였다. 어설픈 해외 경험은 내게 해외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고, 그 환상은 세계일주라는 몽상에 가까운 꿈을 가져다주었다.
세계일주에 대한 나의 상상은 제법 구체적이었다. 에펠탑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유명한 관광명소에서 수많은 관광객들과 부비부비를 할 생각은 없었다. 화려한 외면을 구경하는 여행보다는 답답하고 불안한 나의 내면을 밝혀줄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항상 불안에 휩싸여 떨고 있던 내 내면을 다스려줄 그런 여행, 삶의 행복을 천천히 깨달을 수 있는 여행을 꿈꿨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각 국가의 다양한 사람들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달아가는 컨셉의 행복여행이었다.
행복. 내 인생 최대의 관심사는 행복이었다. 그리고 내 삶의 목적이 있다면 그것 또한 행복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행복은 너무나 두루뭉술하고 답없는 수수께끼 같은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부족한 머리로 행복에 대한 철학 서적이며 심리학 서적을 읽었고, 만나는 사람들과 항상 행복에 대해서 논했다. 하지만 행복은 히키코모리인건지, 대인기피증이라도 걸린건지 나에게 절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나 난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여자에게 더 끌리는 내 본성과 같은 건가.
행복에 대한 집착이 계속 이어지자 국내에선 결코 그 녀석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내 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야의 폭을 세계로 넓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의 틀을 깬다면 그 녀석이 손을 내밀어줄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행복 세계일주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 나는 곧장 떠났다." 라고 하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지만 난 떠나지 못했다. 머리는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 어느 지점을 유유히 걷고 있었지만, 현실은 작고 좁은 내 원룸 방이었다. 왜 아직까지 떠나지 않았냐는 친구들의 질문을 받아칠 변명거리는 충분했다. 턱없이 부족한 돈, 미래에 대한 걱정,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기엔 너무 늦은 나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건 변명일 뿐이었다는 걸. 결국 내가 떠나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용.기.부.족. 그냥 거대한 세계 앞에서 나는 쫄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사그라든 용기의 불씨를 되살리지 못한 채, 행복 세계일주에 대한 내 결심은 점점 희미해져갔다.
시간이 꽤 흘러 더 이상 세계일주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게 되던 어느 날, 친구와 술을 한 잔 하고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왜였을까. 세계일주가 다시 떠오른 건.
문득 떠오른 생각은 쉽게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샤워기 아래서 한참을 생각했다. ‘잠깐만, 내가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목적이 뭐였지? 사람들과 행복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내 삶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근데 굳이 그걸 외국인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나?’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세계일주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새로운 나라의 땅을 밟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의 사람들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잠깐, 그럼 꼭 해외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되는 거 아냐? 근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요즘 페이스북에 신기하고 재미난 사람들 많던데... 내 페이스북 친구들을 만나면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괜찮지 않을까? 근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지?... 에라이, 모르겠고 일단 질러보자.’
샤워기 아래서 튀어나온 이 황당한 생각들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새로운 사람, 다양한 시각, 깊은 대화로 이뤄진 이 프로젝트는 분명 세계일주 그 이상의 즐거움과 의미를 가져다 줄 것만 같았다. 이번엔 이 아이디어를 서랍 속에 넣어두지 않고 바로 꺼내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난, 샤워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곧바로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국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내 최대의 관심사는 행복이었으니까. 최고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세계일주를 마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한 권 내볼까 생각했었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소설이지만, 주원씨의 행복여행은 실화일 것이라며.
근데 방금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그걸 굳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해야되나? 내 페북 타임라인만 봐도 정말 색다르고, 각자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각국의 사람들을 만날 필요 없이 내 페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샤워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면서 생각했다. 내 페친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기로. 직접 찾아가기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모아 책을 출간해보기로.
대신 커피 값이 너무 많이 들테니까 커피는 얻어마시기로. 샤워가 가져다준 순간의 아이디어지만 해보기로 했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얻을 것이 엄청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뭔가 가슴이 쿵쾅거린다. 설렌다. 무지막지하게 재밌는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나도 모르 게 뭔가에 홀린 듯 타임라인에 글을 써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내 뜬금 프로젝트에 반응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프로젝트 응원해요’ ‘나도 생각했었는데 먼저 하시는 분이 있네요. 파이팅’등의 응원 댓글을 달아줬다.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생각했다. ‘그래, 일단 시작하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새로운 사람을 한 명씩 만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프로젝트 이름은 낯선 페친을 만나 그들의 내면 세계를 여행하는 거니까 페친으로 세계일주로.’
술 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님,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이었을까. 그때 당시의 내 행동력은 가히 지상 최고였다. 난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내 글에 댓글을 달았던 한 페친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페친으로 세계일주>
100명의 페친, 100명의 행복
안녕하세요. 강주원입니다.
전 올해 스물 아홉.. 아니 서른이구요. 생존하기 위해 한 민관합동 기관에서 파견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입니다. 아, 이건 제 부업이구요.
제 주업은 꿈톡입니다. 꿈톡은 청년이 청년다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문화기획단체입니다. 현재는 꿈TALK 토크쇼, 꿈톡의 크레파스, 꿈톡 클래스 등을 기획하고 있구요. 올해는 더 다양한 수단으로 청년들과 함께 울고 웃을 생각입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행복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제 최고의 관심사이자, 인생 최고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생각해보니 굳이 여행을 하러 꼭 세계에 나갈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주변의 낯선 사람들의 세계를 통해서 대신 여행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정말 만나고 싶은 페친들을 만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생각했고 바로 행동으로 옮겨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냥 저와 만나서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면 됩니다. 전혀 어색하지 않을 거예요. 잠깐, “왜 내가 선정됐느냐.”라고 여쭤보려고 하셨을 텐데, 기준은 없습니다. 그냥 제 느낌대로 제가 만나 뵙고 싶은 분을 선정했으니까요 ^^
글 읽어보시고 제 세계 일주를 도와주실 의향이 있으시면 OKAY 싸인 주세요. 그럼 시간 맞춰서 커피타임 해요. 감사합니다!
과연 답장이 왔을까? 놀랍게도 아는 거라곤 나이, 이름 밖에 모르는 페친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그리고 5일 후,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렇게 페친으로 세계일주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