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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원 Sep 28. 2018

가슴으로 느껴지는 전통주, 삼해소주

“우리술을 전 세계로 알리는 게 제 꿈입니다.”


청년들이 모이는 <꿈톡 토크쇼>에서 처음 만난 김택상 명인


몇 년 전, 청년들이 모여 자신의 고민과 꿈을 말하는 토크쇼에서 청중 한 분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무엇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20대의 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늦은 건 전혀 없어요. 제 나이에도 꿈을 꿉니다. 저는 우리나라 술을 전 세계로 알리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저도 꿈을 꿉니다. 절대 늦은 건 없어요.”


꿈을 꾸는데 늦은 나이는 없다는 말. 식상할 수 있는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와닿았을까. 그의 목소리에서, 그의 눈에서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알고 보니 술을 빚는다던 그는 그날 강연을 했던 내 지인의 지인이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훗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 지인의 전시회에서 그가 전통주 시음회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난 지인의 그림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그림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그날 마셨던 술의 맛이었다.


우리에게 늦은 나이는 없다고 말씀하시던 그분은, 서울 무형문화재 8호로 지정된 ‘삼해소주’를 만드시는 김택상 명인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전통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그저 그렇구나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삼해소주의 맛은 절대 그냥 그렇구나 넘길 수 없었다. 뭐라 할까. 충격적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그날 내가 마신 삼해소주의 도수는 45도였다. 굉장한 고도주였다. 하지만 시음 잔에 가득 담긴 술은 마치 미꾸라지처럼 내 목으로 쑥 하고 넘어갔다. 굉장히 부드러웠다. 그리고 술이 목을 지나 가슴 정도 왔다고 느껴졌을 때, 술의 향과 맛이 가슴 전체에 퍼졌다. 자극적이지 않은 쌀과 누룩의 향과 맛이 가슴에서 뜨겁게 맴돌고 있었다. 구수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했다. 과일 향이 나는 듯하기도, 꽃 향이 나는 듯하기도 했다. 딱히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어 그저 ‘충격적’인 맛이라고 표현할 뿐이었다. 술 한 잔에 신세계를 경험한 나는, 당장에라도 삼해소주 한 병을 구매해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지만, 그날은 판매가 아니라 시음을 위한 행사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더군다나 1인 1잔으로 시음이 제한돼있어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훗날을 기약했다. 그리고 그 훗날이 4년 후 일 줄 누가 알았으랴. 삼해소주를 다시 만난 건, 4년 뒤 강남의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였다.


“어?! 대박. 여기 삼해소주있다.”


내가 종종 들르는 식품명인체험홍보관에서 삼해소주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명인들의 음식과 음료를 판매하는 곳인데, 가격은 저렴하고 맛은 더할 나위 없어 종종 들르는 곳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몇몇 전통주를 판매하고 있어 더욱더 애정하는 곳이다.


그날도 체험관을 들러 차를 한 잔 시키고 전통주 쪽으로 발길을 옮겨 쭉 둘러보던 중, 삼해소주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에 직원에게 시음을 부탁했고, 직원은 시음 잔에 삼해소주를 가득 따라주었다.


4년 만의 재회였다. 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름 수많은 전통주를 맡아보고 마셔온 나였다. 과거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삼해소주의 향을 맡았다. 쌀과 누룩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꽃의 향이 난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역시는 역시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 향을 맡다가 술을 목으로 넘겼다. 그리고 4년 전의 충격적인 그 맛이 그대로 재현됐다. 감동.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마음을 억누르고 정중하게 한 병을 구매했다.


살 수밖에 없었던 삼해소주, 정가는 25,000원


몇 년 전, 삼해소주를 처음 접할 땐 몰랐다. 비교 대상이 없었기에 이게 이렇게나 맛있는 술이라는 걸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다른 전통주들과 비교를 해봐도 감히 이만한 전통주를 찾기는 힘들었다. 부드러움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말하는 듯한 월등한 부드러움이었다.


그렇게 부드럽게 넘어간 삼해소주는 한동안 가슴에 머물렀다. 가슴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술의 향과 맛이 가슴에서 진하게 느껴졌다. 무슨 술이 가슴에서 느껴지냐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4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술의 맛이 혀가 아닌 가슴에서 느껴졌다. 가슴에도 혀가 있는 것처럼, 내 가슴은 삼해소주의 맛을 느끼고 있었다. 복합적인 맛이었다. 누룩의 진한 향도 있으면서, 쌀의 고소한 맛도 있었다. 다른 전통주처럼 ‘문배술은 배의 맛이 나요, 진도홍주는 약재의 맛이 강해요.’라고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맛이었다. 하지만 ‘모르겠는데 이거 진짜 끝내주게 맛있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맛이었다.


그래, 이런저런 표현을 붙여서 뭐 해. 난 그저 삼해소주는 ‘가슴으로 느끼는 술’이라고 표현하기로 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삼해소주를 한잔하는 순간 공감하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안주와 먹어도 잘 어울리는 삼해소주


삼해소주는 현재 강남에 위치한 <식품명인 홍보체험관>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다른 전통주에 비해 대량생산을 하고 있지 않아 소비자가 손쉽게 구하기는 어려운 술이다. 전통식품명인 제 69호로 지정된 김택상 명인. 그는 삼해소주를 100일 이상 발효시킨 뒤에 증류해서 만든다고 하는데, 그만큼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술이라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삼해소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일반 대중들의 손에 닿기 어렵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명인의 장인 정신과 고집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기도 하다.


김택상 명인이 술을 빚고 계시는 ‘삼해소주가’는 북촌한옥마을 쪽(종로구 창덕궁길 142)에 위치하고 있다. 술을 대량생산하고 유통하고 있진 않지만, 전통주의 맛과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활발히 시음회 및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언제든지 전화를 통해 시음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시음을 넘어 술을 빚는 클래스도 참여할 수 있으니 ‘삼해소주가’로 문의한다면 친절히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조만간 삼해소주가에 방문하려 한다. 그가 빚는 진심 가득한 술들을 맛보기 위해, 그가 말하는 진심 가득한 꿈을 또다시 한 번 듣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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