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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레논 Oct 07. 2023

종이빨대라는 위선자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디저트를 먹으러 유명 버블티 체인점에 들렀다. 나는 테이크아웃 친구는 카공(카페공부)이나 좀 하다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키오스크에서 각자의 메뉴를 고르고나서 각각 '포장'과 '매장에서 먹고가기' 버튼을 눌렀다. 알바생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비대면으로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는 굳이 대면으로 다시 묻는다.


"포장주문은 일회용기로 나가니까 매장 이용은 안되세요?”


친구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버블티를 쟁반에 담아 가져가고 난 윗부분이 비닐로 씰링된 통통한 일회용기 버블티를 들고 나서려는데 알바생이 또 한 번 태클을 건다.


빨갛고 굵은 플라스틱 빨대가 담겨있는 통을 가리키며

“테이크아웃하시는 분은 여기서 빨대 가져가시구요" 하더니 다소 충격적인 안내가 이어진다.

"매장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이 안되셔서 종이빨대만 이용가능하세요-“


이게 뭔 역설적인 문장인가. 내가플라스틱 빨대로 열심히 버블티의 뚜껑을 뚫는동안, 친구에게는 ’일회용품이 아닌‘ 종이빨대만이 허락되었다. 알바생도 이미 이러한 안내를 수백 번 반복하면서 종이빨대가 일회용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조금 찔리긴 할 것이다. 여기서 탓해야할 사람은 사실 알바생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재활용이 잘되는 척 하는 위선자 종이빨대다. 씰링된 비닐을 날카로운 빨대로 팍하고 뚫는 쾌감은 느끼지 못한채, 친구는 넣자마자 눅눅해지기 시작하는 빨대로 버블티를 싱겁게 휘젓는다. 이토록 액체에 약해서 쉽게 눅눅해지기에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은 종이빨대에는 방수처리가 되어 있으며 마시는 음료에 의해 '오염'되기 때문에 사실상 재활용도 쉽지는 않다고 한다.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좀 더 면밀히 따져봐야하겠지만 종이빨대를 비판하는 뉴스 기사들 대부분이 위와 같이 말하고 있다.


얼마지나지 않아 카공을 하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까 나도 빨갛고 탱탱한 플라스틱 빨대로 마시고 싶다고 말할 걸.”

버블을 빨아들이기 위해선 이제 빨대의 모양을 그때그때 손으로 혹은 입으로 성형해줘야할 정도로 빨대는 이미 눅눅해져버렸단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그냥 빨대를 버려버리고 마실 수라도 있지

버블티는 빨대 없이 버블을 제대로 먹기도 어렵잖아!


분노에 힘입어 우리는 종이빨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작했다. 종이빨대의 존재는 공리주의에도 부합하지가 않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저해한다고. 우리가 인생에 낙이 뭐 대단히 있니?

카페에서 빨대로 시원하게 음료를 빨아서 들이키는 그 작은 행복 마저도 얘가 앗아간거야.


그러면 종이 빨대에 장점이 있긴할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보호 단체의 홍보 비디오에서 여러 번 봤던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혀버린 죄없는 거북이가 떠올랐다. 그래, 종이빨대는 일회용품도 아니고 친환경적이지도 않고 우리의 자그마한 행복마저 뺏어가지만 적어도 거북이들의 살을 뚫지는 못할거야. 한참동안 바다를 둥둥 떠다니면서 퉁퉁 뿔어버린 종이빨대 무더기와 거북이들이 헤엄치는 낭만적인 모습을 상상해보지만 현실이 어디 그렇나. 거북이들을 위협하는, 빨대보다 더한 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우리의 다방면에 걸친 고찰이 무색하게도, 11월부터는 종이빨대를 권장하는 계도기간을 지나 이젠 의무가 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종이빨대 사용을 의무화하는 이 법안의 이름은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원재활용법.' 위선자와의 눅눅한 동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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