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밝힙니다.
#2013년 광파리스 신입사원 임원면접장
“그래서 진 씨는, 여기 광파리스에 입사해서 10년 후에 뭘 하고 있을 거 같으세요?”
“저는 10년 후에 칸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도 타고, 누구나 기억할만한 레전드 광고를 만들어서 광고를 통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ㅎㅎ음.. 아직 광고계에 환상이 있는 친구구만“
사실 진 씨는 이 대답을 유도한 것이었다.
“맞아요 환상을 쫒는 거죠. 그런데 환상을 쫓는 것이야 말로 광고의 본질이 아닐까요?
평범해 보이는 이 물을 보십시오(진 씨는 극적인 효과를 더하기 위해 주변에 소품을 뭐라도 활용해야했다)
이 라벨에 막 아이유가 웃으면서 서있으니까 막 이 물이 좋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만 같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수십년 간 야부리를 터는 것만으로 광파리스의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올라온 임원들이 진 씨의 포부있어보이는 척하는 얕은 수를 모를리 없었다. 그럼에도 진 씨는 합격했다. 어차피 광파리스에서는 모두가 광만 잘 팔면 되었으므로.
[광팔이]
화투 용어. 게임에 참여를 해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광만 팔아 이득을 챙기는 것.
즉, 노력 없이 거저 이익을 취하는 것.
- 10년 후 -
#2023년 광파리스 19층 회의실
그 사이 진 씨는 차장이 되었고, 칸 광고제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지난 10년간 그는 자신도 몰랐던 악마의 재능을 발견했다. 고상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에 빈대처럼 거머리처럼 드럽게 달라붙어서 살아남는 광고들을 만들어내는 재능이었다
"거창군에서 사과를 홍보해달래"
"거창하게 생각마요. 거창군의 사과는 거창하니까 핳"
"고양시에 쇼핑몰이 새로 들어선대-"
"우리 쇼핑몰 올 고양? 말 고양?"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서 노인 전용 두유가"
"두유 노(인) 두유?"
"야 재미없어"
"그럼 FUN FUN하게 갈게요"
"제발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
"진지나 잡수시러 가시죠-"
처음엔 진 씨의 경박스럽고 즉흥적인 멘트에
모두가 비난을 하다가도 어느새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을 탈고양 말고양 한다던가
자려고 누워서 이불을 덮으며 FUN FUN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악마적 재능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거 왜 똑같은 걸 자꾸 하냐고~ 안 되는 거 알면서"
"이게.. 노답이야 노답. 여기 뭐 우주폰 매출 부진 극복하겠다고 모여있는 인간들 중에 우주폰 쓰는 사람들 있냐?"
젊고 허우대 멀쩡한 직원들은 다들 대충 끄덕이며 사과폰으로 인스타 피드를 새로고침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니까~ 아나 자꾸 우주폰 프로젝트 하기 싫어 그냥 다른 거 잘팔리는 거 광고할래"
"야 잘 팔리면 너한테 아이디어 왜 내라고 하냐"
입사동기인 전략팀장 전씨와 제작팀장 제갈 씨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조상무가 들어오자 회의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