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J 작가K(19회)
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날, J를 만났다.
일회용 마스크를 벗으며 내가 말했다.
“후배 하나가 강원도 고성으로 이사를 간다네.”
“고성이면 너 군생활 하던 데 아냐? 군대 후배인 건가?”
“아니. 걔가 원래 약한 아토피 같은 게 있었는데, 요새 그게 너무 심해졌다나봐. 미세먼지 없는 곳을 찾다가 거기로 가기로 했대."
"결혼은 안 했고?"
"아냐. 6살 짜리 딸도 있어. 하고 있던 가게랑 집이랑 다 처분하고 가는 거야. 애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서울을 떠나 있고 싶다네. 좀 부럽더라고."
"결정이 쉽지 않았겠구만."
"오히려 쉽지 않았을까? 걔한테는 공기질이 곧 삶의 질이었을 테니까."
그러다 어제 베이징에서 대규모 불꽃놀이가 있었다는 기사가 생각나 말했다.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나라 옆에 사는 업보인 건가... 맘놓고 숨을 못 쉬니..."
함께 손잡고 중국 욕을 할 줄 알았던 J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죄다 자기들 탓이라는 논리에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을 걸?"
"중국 탓이 아니란 거야?"
"먼지가 중국에서 오는 건 맞지."
"근데?"
"중국의 그 많은 공장들이 대체 왜 밤낮없이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을 안 한다는 거지."
"그거야... 중국 인민들께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중국 인민만이 아니지. 전 세계가 중국의 싼 물건들 덕을 보고 있잖아. 공장에 대기오염 방지 설비를 하면 그 비용 만큼 물건 값이 오르겠지."
"실은 아무도 그걸 원치 않는다?"
"그거랑은 약간 다른 얘긴데..."
"형 말대로 그렇게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제일 타격을 입는 건 중국일 거잖아. 주변 국가 국민들은 암에 걸리든 말든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짓이지 뭐야, 그게."
"문제는 중국이 아니야. 주변국들의 압력 때문에 중국이 조치를 취하고, 그렇게 해서 중국산 물건값이 오른다면, 정말 대기오염이 사라질까?"
J의 질문에 갑자기 얼마전 김정은 방문설이 돌았던 베트남 삼성공장이 떠올랐다.
"많은 공장들이 다른 나라로 이전하겠구나!"
"그렇지. '세계의 굴뚝'이 이전하겠지."
"그럼 방법이 없는 거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야."
'무더위(또는 동장군)가 기승을 부린다'는 말보다
더 흔해빠진 말이 돼 버린 '미세먼지 경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누구의 책임인지에만 몰두하는 분석가들만 있다.
아무도 범인이 아니라고 할 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가 범인이다.
바로 우리다.
세계의 공장, 세계의 굴뚝은 어디로든 옮겨갈 수 있지만
절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공장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고,
우리는 공장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환경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따위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쓰는 공산품들은 그 쓰임 만큼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어 놓고
필요 이상의 필요를 만들어 내며
끊임없는 소비만이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믿음으로
유지되는 사회에 대한 얘기다.
소비적인 삶의 방식은 전지구적 문제다.
중국 탓이 아니다.
대기오염 또한 그러하다.
어느 한 나라의 책임으로 미룰 수 있는 문제라면
오히려 낫겠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제2, 제3의 중국은 언제 어디라도 생겨난다.
"형, 맞다! 공기청정기 새로 샀댔지? 일본 거라고 했나?"
"발뮤다라는 일본 회사 거야."
"어때? 써보니 좋아?"
"근데... 발뮤다 공장은 중국에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