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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환 Jan 12. 2019

인문학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목수J 작가K(1회)

J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TV가 잘 보이는 자리

잘 알려진 철학자 하나가 TV에 나온다.

프로그램 제목은 인문학 어쩌고...

J가 말한다.

“인문학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 강의를 인문학이 아니라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걸?

요샌 강의도 TV에 나올 만큼 돈이 되는 컨텐츠란 거지.”

J가 물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한다.

“상품이 아닌 게 없어.

내가 손닿는 곳에 있는 모든 게 상품이야. 진절머리가 나.”

“그것도 그렇지만, 저런 게

사람들이 인문학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인문학이, 뭔가 많이 알아야 하고,

저사람들처럼 유식해져야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잖아.”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학 페티쉬인 거지.”

“페티쉬? 저런 걸 보고도 페티쉬라고 하나?”

“그렇지. 연애를 하지 않고 여자 빤쓰를 사모으는 놈들과 같은 거지.”

J는 공공장소에서도 사용하고자 하는 단어에

거리낌이 없어, 나는 종종 화끈거렸다.

그는 일부러 그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곤 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앉아있는 사람들도, 강연자도

진짜 인문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거지?”

“그렇지.”


때마침 우리가 시킨 불백이 나왔다.

고기에 쌈을 싸느라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온 나라가 온갖 것들을 판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의 외모도 ‘경쟁력’이고

사람이 일하다 죽는 일도 한낱 ‘비용’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한창 인문학이 열풍이다.

그간 외면받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인간 중 하나였던 스티브잡스가

언젠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이후,

그처럼 살다 죽고싶어하는 많은 인간들이

대체 인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말씀’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기에서 말씀을 찾는 모양새다.

그러다 그걸 찾으면 ‘아’하고 탄식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것에

쉽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문학은 세계관을 뒷받침하기보다는

그걸 깨부수는 데 재미가 있고 책무가 있다.


세상 모든 곳에 철학이 있고 인문학이 있다.

강연과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문학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곳엔 때로 말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거기에서

말씀과 철학과 인문학 대신

상품성을 찾고 그걸 사고 판다.

어쩌다 찾아온 인문학 열풍은

이렇게 상품이 되어

누구의 세계관도 깨부수지 못하고 자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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