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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Jan 18. 2020

008. 푸르공, 지평선을 달려라.

몽골. 고비사막투어(1)

호텔에서 며칠 몸을 추스린 후, 본격적으로 사막의 별을 보기 위해 투어를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비싼 호텔에서 나와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숙소로 옮기고 밀린 빨래들을 하기 시작하는데, 작은 싱글 방에 세탁물을 널다 보니, 빨래 지옥에 빠진 것 마냥 옷가지들에 치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챙겨 온 옷가지들이 많아도 9월의 울란바토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추워서 가지고 있는 옷들을 다 껴입어야만 했다. 


숙소의 공용공간에서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를 만났다. 명하. 그녀에게도 같이 투어에 가지 않겠냐고 말을 건네본다. 이미 20일이나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몽골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꺼이 다시 가겠노라 말했다. 병이 나은 뒤로 일정은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러브 몽골’ 이란 카페에서 일정에 맞는 이들로 구성된 4박 5일간의 ‘고비사막’ 투어였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투어 비용이 저렴해진다.)


사실 9월 말은 몽골 투어의 비수기 시즌에 들어가면서, 북쪽이나 중앙 쪽 투어는 이미 닫혔고, 갈 수 있는 곳은 남고비사막을 낀 4박 5일 투어가 전부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야 몽골 현지에서 투어를 신청했지만, 다른 이들은 한국에서 투어를 신청하여 넘어오는 것이었다. 그나마 이 사막투어라도 조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북쪽에는 몽골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홉스골 이란 호수에 다녀오는 투어가 있는데, 갈 수 없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이번 투어를 가이드에게 직접 컨택해서 어레인지를 하고, 한국에서 넘어 오는 청년 재훈에게 꼭 따뜻하게 입고 오라고 당부하고, 나는 변비약과 감기약을 부탁했다. 분명 4박 5일간 제대로 씻지도 못할 것이고, 수세식 화장실은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각오를 한지라, 나중에 대자연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지 못한다면 울란바토르에 와서 변비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드디어 출발 당일, 일부 짐을 챙겨 들고, 현지가이드 바타, 드라이버 간바 아저씨와 인사를 했다. 바타는 한국에서 유학 경험이 있어서 한국어에 능통하여 의사소통이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몽골어가 가능한 바타 투어의 인턴 같은 존재인 여진 양을 만났다. 나를 포함하여, 투어에서 돌아온 밝은 에너지의 명하, 세계 일주를 하는 청년 원재, 한국에서 온 직장인인 재훈과 은진,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온 호상까지, 오늘 처음 만난 우리 9명이 이제 곧 4박 5일 동안 동거동락하며, 씻지도 못하고, 서로의 못 볼 꼴을 보게 되겠지..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귀중한 시간을 내어, 각자가 꿈꿔왔던  "몽골"의 이미지를 추억의 캔버스에 함께 그려나가게 되었다.






인사를 나누고, 옆을 보니, 아까부터 눈길을 사로잡던, 푸르공이라 불리는 러시아제의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차량이 보인다. 네모 반듯한 차량 뒷문으로 짐을 싣기 시작하고, 마주 앉게 된 시트에 무릎을 마주 보게 앉게 되니, 처음에는 불편하다가도, 결국에는 정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는 불편해지거나..)


간단히 각자의 소개를 나누고, 앞서 투어 경험이 있는 명하, 여진 양의 이야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 종일 틀어대는 몽골노래는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몇 곡쯤은 모두들 흥얼거리게 되었다. 



#네모난 차 안에 네모난 창으로 보이는 네모난 세상



잿빛 울란바토르를 빠져나오자,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지면서, 건물들이 모두 사라졌다. 나중에는 전기선을 힘겹게 붙들고 있던 전봇대마저 사라졌다. 정말..단어 그대로,  땅 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평선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반듯한 도로 하나가 일직선으로 끝없이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지금 당장, 이 도로에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생명체는 우리가 전부였다. 마치 거짓말처럼, 세상에 우리만 남겨진 것 같았다. 


5~8월이었으면 푸른 녹색빛으로 물들었을 초원은 지금은 길 옆 풀포기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일부 더 삭막한 지형에는 마른땅과 돌들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운전석의 뒤에서 길을 막고 지나가는 양과 염소 떼들이 보인다. 분명 주인이 있는 녀석들이겠지만, 이렇게 방목을 하면 어디서 어떻게 찾는담. 나는 길을 건너는 그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저 무리 속에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푸른 하늘을 덮고, 경계가 없는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 놀다, 해가 저물면, 그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끝없는 지평선을 언제까지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오후, 푸르공이 갑자기 멈춰 섰다.

차에 문제가 생긴 듯 했다. 어쩜 이 오래된 차가 갑자기 서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바타도, 간바도 딱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늘 그랬던 것 처럼,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인 마냥, 차를 고치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차가 언제 다시 출발하는지 묻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네모난 세상에서 빠져나와, 지평선 도로 한가운데서 사진을 찍거나, 메마른 땅 위에 돌로 금을 그어, 땅따먹기 놀이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길 위에 벌러덩 누워서 하늘을 봤다. 

자연스러웠다.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 있었다. 


오히려 이렇게 잠시나마, 푸른 하늘을 맘껏 보는 것이,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눈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정녕 원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넘쳐나는 것들에서 벗어나 여백이 있는 아니, 여백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바라보는데, 오히려 가슴은 어떤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벅차올랐다. 코 끝이 시큰거렸다.


푸르공을 고치느라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소비해서, (아무도 “소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원래 가려던 목적지 말고, 바로 유목민의 숙소 ‘게르’로 향했다. 나무 살을 원형으로 뼈대를 세워 천을 얹어서 만든 임시주거형태로 게르 가운데는 그 천을 당겨 날아가지 않게 중심을 잡는 무거운 추가 정중앙에 달려있다. 원형 모양의 공간에 침대 역시 원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고, 저절로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가운데 공간이 생겼다. 


'참, 화목한 구조이자 배치로군. '


이런 곳에서 가족들이 살면 프라이버시는 없겠지만, 싸우고 나서도 금방 화해할 것 같았다. 피하고 싶어도, 얼굴을 안 쳐다볼 수가 없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밖에는 벽돌로 된 집에 까만 털로 덮인 개 한 마리가 묶여 있고,  게르 몇 채를 제외하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음" 이란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와 동시에 "완벽함"이 있었다. 


바타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간바는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지평선 저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시야에 걸치는 것 없이 온전히 붉은 해가 땅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침묵을 지킨다. 각자의 사색의 공간으로 빠져든다. 


낮에는 투어를 함께 하면서도,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개인적인 시간에는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보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고요했지만, 어색하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가축을 돌보고 사는 유목민의 삶이란 어떤 기분일까. 

매일 끝도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하늘과 구름을 보고 콧노래를 부르다가, 뜨거운 한낮에는 게르에서 햇빛을 피하고, 어둑해질 때즘, 다시 양 떼를 몰아 울타리 안에 가두고 저녁이 오면, 모닥불을 피우려나... 게르 안은 온기로 가득 차고, 마유주 한잔에 얼굴이 붉어질까..



바타는 음식솜씨가 뛰어났다. 첫날 첫끼부터 뚝딱 만들어냈는데 오이생채가 올라간 볶음 파스타였다. 아까 장보는 길에 사 온 골든 고비 맥주 한 캔씩으로 간단한 건배를 들었다. 

우리의 첫날 일정을 위하여!



간바가 피워둔 나무장작이 타들어가는, 불이 이글거리는 곳으로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어두워진 주변으로 인해 불이 더욱 빨갛게 보였다. 가만히 불꽃을 응시하다 그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숨이 턱 막혔다.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다. 


머리위로, 엄청난 양의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별빛에 질량이 있다면, 그 무게에 압사당할 정도로, 땅에 내 딛은 두 발이 비틀거릴 정도 였다.  온전히 압도당한 순간이었다. 



"와! 별똥별이다.!"

누군가의 외침으로, 모두들 먹잇감을 찾는 사냥개들처럼, 눈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나의 별똥별은 어디에 있을까.’ 


나 역시 고개가 뒤로 꺾일세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똥별이다.! 어서 소원을 빌어야.. 엇...하나. 둘. 셋...’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꼬리를 빼고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비는 것도 잊은채,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은하수. 별똥별… ‘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두고두고 생각날 거야.’

볼이 빨갛게 상기된 것이 추워서인지, 아님 흥분해서인지 나와 일행들은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늦은 밤, 게르 안으로 돌아와서도, 밖에는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는 걸 생각하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침낭을 코끝까지 끌어당겨 덮었다. 



눈을 감아도 별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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