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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16. 2024

운동장에서 펼쳐진 교사와 학생의 한마음!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또는 자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날!

 교사를 평생 직업으로 알고 아이들과 생활하고 있지만,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에 고개를 끄덕일 때가 어디 한 두 번이었겠는가! 아이들과의 관계, 내 마음 같지 않은 수업 시간, 과도한 행정업무, 학부모님과의 대화 등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상처로 곪아가거나 위기의식을 느낄 때마다 한숨을 몰아 쉬며, 어느 직장인이나 그렇듯이 퇴근을 기다리고, 퇴직 후 삶을 그려보는 날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다행히 교사로서 지칠만 하면 때마다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는 때가 마련되어 있으니 다시 또 심기일전하며 30년을 이어온 듯하다. 방학 이외에 나에게 보석 같은 날이 있다면, 바로 체육대회와 축제일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또는 자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날이다.


 특히 체육대회는 함께 힘 모아 땀 흘리고, 목청껏 소리쳐 응원하고, 다 같이 승리에 기뻐하고, 안타까운 패배에 서로 위로하면서 하나가 되는 날! 지난주 금요일 '2024 체육한마당'이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졌다. 올해 새로 전근 온 학교라 아직 낯선 것이 많아 적응 중인데, 이날 아이들의 질서의식과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많이 웃었더니 한껏 친근해진 느낌이다.

  우리 학교 체육한마당의 하이라이트는 입장식이다. 30여 개 학급이 운동장 중앙에서 단체 율동을 펼치며 입장하는 것이다. 학급 별 2분 여 동안의 공연을 위하여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기에 진심 어린 환호성과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멋있고, 귀엽고, 개성적인 아이들의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스레 교사로서의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내리쬐는 직사광선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니다. 여기저기 담임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렌즈에 담기 바쁘다, 얼굴에 더할 나위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드디어 우리 반 아이들의 입장이다. 시작은 엉성한 듯 수줍음으로 출발했으나 가지가지 소품과 개성적인 복장으로 공연을 잘 마쳤다. 대담하게도 교장선생님까지 모셔와 통 큰 입장식의 큰 그림을 완성하였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무거운 곰돌이 가면을 쓰기도 하고, 칼라풀 염색 머리 착장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빛내 주었다. 아이들과 교장선생님이 서로 통하는 정겹고 감사한 장면이었다.

아이들 기분에 맞춰 함께 하는 교장선생님!

 1회 고사를 앞둔 상황 속에서도 학급행사를 위하여 서로 협동하며 애쓴 아이들이 대견했다. 입장식 안무에 쓸 곡을 선정하고, 동작을 만들고, 30명이 한마음으로 연습을 하여 하나의 공연을 준비한 아이들! 방과 후 시간 조율하기가, 개인의 취향을 잠시 미루고 단체 활동에 참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의 동작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며 다름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 속에서 훌쩍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이라 더 반가웠다.


 교실보다 운동장에서의 아이들이 더 빛나고 예뻐 보이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비법을 공유하고, 장갑 낀 손바닥이 벌겋게 될 때까지 힘을 모아 당기고 서로 격려하는 모습, 이어달리기에서 넘어진 친구에게 '괜찮아'를 외치며 응원하는 모습, 함께 박자를 맞추고 조율하며 단체 줄넘기 개수를 세는 모습 등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아이들과 해라, 마라 실랑이 벌일 일 없이 오로지 한마음으로 아이들의 동작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지지하고 응원하기만 하면 되는 날이니 웬만하면 즐거울 뿐이다. 폐회식 후 응원석에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 정돈한 모습까지 더해지니 햇빛에 지쳐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줄다리기를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댄스마당을 마련하고, 더위를 날려줄 물줄기를 통해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학생심판 도우미들의 자율적인 질서지도까지.... 다채로운 반티의 색깔들이 모여 생동감과 화려함을 보여주듯이 아이들과 함께 많이 웃은 힐링의 화려한 날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따라주고... 서로 통하는 소통의 운동장이라 나는 즐거운 것일까?

 체육대회가 끝난 오후, 행사를 주도한 체육부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행사 진행 내내 질서 지도 및 정리 정돈까지 모두 선생님들의 큰 협조가 있기에 가능한 오늘이었습니다"

 안전사고 없이 무탈한 하루를 마무리한 것을 함께 감사드렸다.

  월요일, 중앙현관 벽면을 보니 15일 교사의 날을 기념하여 아이들이 마련한 상장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손글씨로 또박또박 마음을 전하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나도 슬그머니 나의 상장을 찾아보고 미소 지었다. 의례적인 행사일지라도 아이들의 진심을 누리고 싶었다.

 석가탄신일과 겹쳐 5월 15일이 휴일이라 마음 편하다는 교사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학교가, 학생과 교사가, 교사와 사회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존경은커녕 존중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는 교사들 속에 나도 있다. 교직이 더 이상 위험한 직업이 아니기를, 저연차 교사들이 미련 없이 이직을 원하는 직종이 아니기를, 막무가내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화풀이 대상이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운동장에서 펼쳐진 한마음, 서로 알아보고 서로 응원하던 소통의 즐거움, 함께 감싸던 상식적인 관계의 정갈함을 당분간 되새기며 또 힘을 내 보려고 한다. 나는 교직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30년 경력의 교사이다.          

 이 글은 '학생들에게 상장을 준 아이들, 뭉클했습니다.'라는 기사로 오마이뉴스(5/16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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