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 Vida, 여전히 설레는 인생 60대 시작!
월간에세이 2026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갱년기라는 말조차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 단어가 된 지 오래다. 틀림없이 틀리고, 잊어버리고, 느려지고, 깜박거리는 일의 연속! 늙음 앞에서 허둥거리고 낯설어하던 마음이 어느새 체념한 듯 일상이 되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 믿을 수 없다. 내 나이를 떠올리며 처음 든 생각은 '아,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구나'였다. 오래전 부모님의 환갑,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이미 늙음에 익숙한, 원래부터 60대인 것처럼 부모님을 바라보던 때, 이미 그들은 나이 들었고, 이제는 인생을 마무리할 일만 남은 것 같은 노인으로 여겼던 것 같다.
이제 그 나이에 이르고 보니, 내 나이를 그리 여기는 젊은이들의 사회적 관념에 섭섭할 때가 종종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은 부모님의 나이를 따라가며, 미처 헤아리지 못한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까? 아,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이러했겠구나! 때로는 후회로, 깨달음으로, 아픔으로 되새김질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너도 내 나이 되어 봐라~' 생전 엄마의 목소리가 자주 메아리친다.
지난주 대학 선배들을 만났다. 환갑을 넘긴 그들과 흥겨운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번 주요 화제는 '어르신'이었다. 지하철역이나 관공서에서 '어르신'으로 호명될 때마다 어색하고 심지어 깜짝 놀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마법에 걸린 듯 청춘으로 자동 회귀하는 모임이라서 우리의 나이를 잠시 잊었기 때문일까?
그들이 예우해서 부르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정작 어르신인 우리는 받을 준비가 덜 된 것이다. 아주 오래전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에 어색하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 선배를 어르신이라고 한다고요'라고 놀란 토끼 눈을 뜨고 공감했지만 어디까지나 어르신인 우리끼리의 씁쓸한 마음일 뿐이다.
늙어가는 몸에 맞게 마음도 같이 나이 들어가면 좋을 텐데, 쉽지 않다. 몸에 비해 더딘 마음의 비애일까? 마음만은 청춘이다, 라는 말을 되짚어보다가 곧 맞이할 나의 60대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어느 하나 만만찮은 삶의 연속이었다. 취업 준비로 마음 졸이던 20대, 출산과 육아로 정신없었던 30대, 아이들 학업 관리로 힘들었던 40대,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과 노쇠한 부모님 걱정으로 가득한 50대. 그래도 그간 기울인 삶의 노력 덕분에 갈수록 마음의 안정과 생활의 평온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는데, 특히 50대 중반은 인생의 황금기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호시절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50대만 같아라! 오래 머물고 싶었던 그 50대가 지나간다.
곧 맞이할 60대 인생! 퇴직 후의 삶에 의구심이 생기고, 생로병사의 고통에 두려움이 앞선다. 주름과 머리숱을 확인하며 거울 보기가 싫어지고, 떨어지는 기억력과 잦은 실수로 무력감을 느꼈다. 병상에서 거동조차 못 하거나, 치매로 스러져 가던 부모님 모습에 지레 겁먹고 갈팡질팡 헤매기 바빴다. 나름 인생의 전환기라 여기는 지금, 새로운 다짐이 필요했다.
그러다 뜻밖의 장소, 뮤지컬 '프리다' 공연장에서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영화와 그림으로 이미 친숙한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 멕시코, 강렬한 색채, 고통과 운명에 몸부림친 비극적 인물로 알려진 프리다를 뮤지컬에서 어떻게 그렸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배와 허리를 쥐어짜는 듯한 프리다의 육체적 고통이 전율처럼 흐르고, 유산으로 잃어버린 아기를 향한 절규가 객석을 가득 메울 때, 프리다의 쓰디쓴 초콜릿 같은 인생이 몹시 아프게 느껴지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생전 엄마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생때같은 아들의 죽음, 잃어버린 다리의 힘, 온갖 병마가 덮친 말년의 삶 등 엄마와 프리다의 고통이 하나로 이어져 몹시 서럽고 마음이 아파서 결국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로 평생 짊어진 육체적 통증, 결혼으로 마주한 불같은 사랑과 믿을 수 없는 배신, 이어지는 유산과 불임 등 그 고통의 터널을 프리다는 어찌 지나올 수 있었을까?
'그림은 유일한 내 삶의 거울이고 용기이다'라는 프리다의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결국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녀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굴곡진 엄마 인생에 남은 작품은 무엇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 주름과 노화 걱정에 허우적거리며 우울할 때가 아니다. 엄마가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던 사람, 엄마 인생의 작품으로서 나를 귀히 여기며, 보다 더 사람답게 잘살아야 하는 것이다. 역경과 고난 후 얻은 보람이 나와 내 딸들의 귀한 인생으로 이어지도록 끝까지 힘을 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 박완서 작가의 글에서 마음에 담아 둔 문장,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되새긴다. 인생은 60부터, 설레면 청춘이다. 앞으로 나를 두근거리게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퇴직 후 교사가 아닌 삶은 어떠할까? 늘 시간에 쫓겨 종종거리던 출퇴근 시간이 여유로움 가득한 날이 될 테니 설렌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 생활이 귀하게 여겨지니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힘을 낼 용기가 생긴다.
결혼을 앞둔 딸을 떠올리면 새 가족을 맞이할 일에 마음이 달뜬다. 사위와 함께 하는, 손자라는 존재가 선물할, 삶은 우리 가족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부모가 된 딸과의 관계는 어떻게 흐르고 발전하여 인생의 깊이를 더할까?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00만 명 시대에 그려질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10년 동안 글쓰기 활동으로 출간, 방송 출연, 기고 등의 성과를 나름 이루었으니 혹시 모를 용기를 내어 소설 짓기에 도전하고 있지는 않을까? 상상만으로 신나는 모습이다. 노쇠해지는 육체에 반해 정신과 마음은 진정 어른답게 성숙해 가고 있다면, 늙음을 유세 부리지 않고 투덜대지 않고 가뿐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면 얼마나 값진 일일까?
강아지와의 산책도 여전히 설렐 일이다. 나에게 따끈한 온기를 채워주고, 무해한 눈빛으로 깊은 교감을 나눠 주는 반려견! 포실한 털을 쓰다듬으며 동물을 사랑하고, 인간을 중히 여기는 나이 듦으로 나를 확장하리라. 나의 60대 인생에 늘 반려견이 옆에 있어 행복을 더할 것이다.
프리다의 강렬한 삶을 통해 인생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생각하며, 어찌 늙어갈 것인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려 보았다. 어떤 희망으로 남은 인생을 그리든 그녀처럼 열정적으로, 그녀처럼 깨어있으리라. 웃음 짓는 온화한 얼굴로 내 인생의 꿈 또한 계속 피어나리라. 'Viva la V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