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시민과 함께하는 종교 예술 한마당-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우연한 장소에서 마주한 뜻밖의 기쁨은 두 배로 즐겁다. 바로 지난 토요일인 11월 15일 대학로에서의 일이다. 혜화역 주변에 볼 일이 있어 잠깐 지나치는데 마로니에 공원에 수많은 천막 부스가 눈에 띄었다. 가을 햇빛은 화려하고, 푸른 하늘에 노란 은행 잎이 눈부셨다.
젊음의 거리답게 버스킹 공연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 펼쳐지는 마술쇼는 흥미진진했고, 발라드 가수의 노래는 가을의 정서를 짙게 물들였다. 발길을 멈추고 젊은이의 공연을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가뿐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화사한 가을빛이 고마웠다.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를 보니 오늘 행사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2025 시민과 함께하는 종교 예술 한마당'의 개회식이 펼쳐지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행사 안내장을 보니 사단법인 한국사회평화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종교문화 행사인데, 시민들에게 종교문화 체험부스, 종교문화 예술공연 등을 통해 다양한 종교문화를 소개하는 행사로 7대 종교(원불교, 개신교, 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등)가 참여하고 있었다.
포교 활동이 아님을 강조하는 행사로 예술을 통해 시민들에게 7대 종교를 소개하는 시간을 넘어 나눔과 공존의 가치까지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행사라니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왔다. 종교 문화를 이해하는 스탬프 투어 완료 시, 취약계층을 위한 도시락 1개가 적립되는 ‘모아 모아 나눔’ 프로그램, 기부받은 의류를 필요한 이웃과 나누는 ‘자원순환 옷나눔부스’, 유기동물센터에 전달할 '수건 기부 창고' 등을 운영해 시민들이 더불어 사는 가치 실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축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자원순환은 물론이고 동물복지까지 폭넓게 나눔의 의미를 확장하는 행사라 더 관심이 갔다.
우리도 발길을 멈추고 체험에 나섰다. 염주 만들기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선 후 차례가 되자 의자에 앉아 염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핑크, 남편은 푸른색의 구슬을 골라 불심을 담아 정성껏 만들었다. 구슬을 집어 줄에 끼우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지만 10 여 분만에 2개의 염주를 만들어 각자 손목에 낄 수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주 만들기 부스에도 방문하여 묵주도 만들었다. 하나하나 구슬을 줄에 낄 때마다 어머니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다. 불교든 천주교든 우리 인간이 지향해야 할 점은 같을 것이다. 바르게,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 수 있기를 소원했다. 체험용 구슬의 품질도 우수하여 꽤 고급스러운 묵주를 만들었다.
유교 부스에서는 붓글씨로 가훈을 써 주는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경상도 문경에서 활약 중인 서예가님의 필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붓글씨와 묵향이 어우러져 오랜만에 옛 것에 취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화기치상(和氣致祥)과 다정불심(多情佛心)을 골라 부탁드렸다. 조화롭게 화합하여 그 기운이 어우러지면 상서로운 기운에 이를 수 있다는 화기치상, 다정다감하며 자비롭고 착한 마음의 다정불심! 좋은 기운과 선한 마음이 집안에 가득 피어나면 좋겠다. 인쇄로 무엇이든 찍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모처럼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옆에는 예쁜 손글씨로 고운 마음을 담아 책갈피를 만들어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손글씨 작가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 오애순 손글씨를 대신 쓴 분이었다. 좋아했던 드라마라 반가운 마음에 어떤 문구를 엽서에 담을까 생각하며 긴 줄에 합류했다. 가는 붓펜으로 써 내려가는 동작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우리 가족의 건강과 아이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문구를 생각했다. 특히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 큰딸과 예비사위를 떠올리며 결혼 축하메시지를 부탁드렸더니 특별한 크기의 작품을 써 주셨다. 가슴 뭉클하게 고마운 글이 완성되었다. 엽서와 책갈피에 담긴 글과 글씨를 마음에 담으니 감사한 마음이 차올라 나도 소소한 간식을 작가님에게 건네고 다음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밖에도 '선비복식 입어보기' 체험, ‘마음 쉼 부스’, ‘랜덤 응원 메시지’, ‘상생 주제 공연’ 등이 흥미로웠다. 우연히 접한 행사였지만 종교 문화를 이해하고, 나눔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귀한 체험이었다. 검색을 통해 2024년부터 사회를 위한 상생 나눔의 활동으로 ‘이웃사랑 실천운동’과 ‘이웃종교 화합행사’, ‘희망의 숲 나무 심기’ 등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민과 종교인이 자연스럽게 만나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종교 문화를 열린 시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2시간 남짓의 체험을 마치니 가을은 더 짙어져 단풍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아르코 예술극장의 붉은 벽돌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게 보였다.
여전히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악기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고, 또 다른 가수들이 나와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사진으로 응원 축하 메시지를 확인한 아이들은 좋아라 댓글에 의견을 남겼다. 참 좋은 날이다. 아까 언급한 다정불심(多情佛心)처럼 평생 나의 숙제인 다정한 말투를 꼭 실천하고, 화기치상(和氣致祥)으로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되새기리라!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계절이 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자연도, 인간도 풍성한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 짓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찾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뜻깊은 추억 하나를 추가한 의미 있는 날이다.
이 글은 방금 11월 1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