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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진 Jun 12. 2023

첫인상

잿빛 겨울

우리는 지난 2월 중순 뉴욕에 왔다. 정확히 말하면 짝궁은 이때부터 아예 뉴욕에서 살기 시작했고 나는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왔다. 같이 살 집을 찾아 짝궁의 초기 정착을 돕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퇴사가 아닌 휴직을 계획 중이었던 만큼, 회사 일과 한국에서 처리할 일을 마무리 짓고 뉴욕으로 올 요량이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기반으로 활동하시는 한인 부동산 중개인 애니 부부가 공항으로 우리를 마중 나와주셨다. 애니님은 미국 거주 한인 온라인 카페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셔서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이 분과 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공항 픽업, 거주지 확정 뒤 입주시 차량 이동 서비스 등을 제공해 주신다. 애니님이 중개인으로 활동하시고 남편 분이 차량 운전을 맡아서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덕분에 우리는 JFK 공항에서 맨해튼 57번가에 있는 호텔로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주 가는 눈송이가 조금 내렸다. 

창밖으로 본 뉴욕은 잿빛이었다. 공항이 있는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서자 인적이 더 많아졌지만 거리는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겨울은 뉴욕의 비수기다. 하지만 차는 꽤 밀리는 편이었다. 맨해튼은 교통이 좋은 편이 아니다. 넓지 않은 도로에 비해 차는 항상 많고, 보행자는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바쁜 맨해튼의 운전자들의 손은 쉽사리 경적으로 향한다. 도로에서는 누가 더 크게 울리나 시합이라도 하듯 경적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에 세계 최고 데시벨을 자랑하는 구급차나 소방차 사이렌 소리까지 가세하면 그게 바로 뉴욕 맨해튼의 소리다.

https://youtu.be/xJPqtD7HPko


1시간 남짓 걸려 호텔에 도착했던 것 같다. 이른 아침 도착해 체크인까지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던 만큼 짐만 맡기고, 주변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뉴욕 스타벅스 매장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잠시 서서 마실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이 있거나 아예 테이크 아웃만 가능한 매장도 있다. 호텔에서 가까워 찾아간 첫번째 매장에도 테이블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두 번째로 가까운 스타벅스 매장으로 찾아갔는데 다행히 아늑한 테이블이 여러개 마련돼 있었다. 단, 스타벅스 전용 매장은 아니었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아마존GO과 콜라보 매장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커피를 마시거나 아마존고에서 집어 온 샐러드, 스시도시락, 스낵 따위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잘 마련돼 있었다. 우리는 모바일 앱으로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둥근 테이블과 테이블을 둘러싼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수십개의 카메라가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무인 매장으로 운영되는 아마존고 손님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한 장치로 추정됐다.

커피를 몇 모금도 채 마시지 않았는데 자꾸만 눈꺼풀이 감겼다. 14시간의 비행동안 난 거의 자지 않았다. 비행 내내 내 시선은 뒤늦게 빠져든 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재생되고 있는 아이패드 화면에 고정돼 있었다. 중간중간 잠시 눈을 붙이긴 했지만 '통잠'을 자지는 못했다. 호텔 체크인까지는 몇시간이나 남았는데 잠은 계속 쏟아졌고 난 카페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로 했다. 부끄러움은 짝궁의 몫이었다. 그렇게 카페에서 시간을 흘러 보내다가 오후 3시즈음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체크인은 오후 4시였는데 우리를 위해 1시간 일찍 체크인을 도와주겠다고 호텔 직원이 약속한 시간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넓고 하얀 침대가 반갑게 우리를(?) 아니, 나를 맞이했다. 덩달아 반가워하며 잠시만 눈을 붙이기로 했다. 정말 잠시만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일어나니 이미 깜깜했다. 저녁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잠을 채웠으니 이제 배를 채울 차례.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쉑쉑버거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집 구하기라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온 여행 - 사실상 출장이었던 만큼, 지친 몸을 이끌고 새로운 맛집 찾기에 나설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심지어 쉑쉑버거는 뉴욕에서 시작된 찐 로컬 맛집이기도 하고 말이다.  

T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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