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6년 차 한국 배우, 아티스트 강산호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강산호 배우는 눈빛이 깊다. 뉴욕의 빈 아파트에서 열린 실험적 연극에서 그를 처음 봤는데 출연 배우들 중 그의 눈빛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연극이 끝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음은 더 깊어 보였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연결될 수 있는 뉴욕에서 우리의 마음은 통했다. 그가 사는 브루클린에서 처음 만나 커피를 마셨고, 몇 달 뒤에는 그가 참여한 (또 다른 실험적인) SF 연극을 보러 갔다. 세 번째 만남은 인터뷰였다. 산호 배우는 나의 요청에 브루클린 집을 기꺼이 공개했고, 점심 식사로 연어스테이크와 오이 샐러드를 직접 만들어줬다. 그가 손수 내려준 커피까지 모든 게 맛있고 푸근했다.
한국에서 딱히 좋아하는 것 없이 다소 심신한 학창시절을 보내다 중학교 때 영어를 배울 겸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연극 활동에 참여한 게 그의 연기 인생 시작이다. 그 길로 연기에 푹 빠져 미국 최고 예술고인 인터라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시라큐스대에서도 연기 전공으로 예술학사를 받았다.
“무대 위에서 뭔가 약속된 시간 안에 약속된 언어로 제가 뭔가를 준비해서 말했을 때의 그 만족감이 엄청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니까 외워서 구현하면 약간 잘하는 것처럼 들리잖아요. 그리고 (대사는) 훌륭하신 분들이 열심히 압축해서 골라서 쓰신 단어들이니까, 의도와 목적이 정확한 대사들을 하면서 엄청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조곤조곤 말하는 산호 배우는 마냥 부드러워보이지만 사실 매우 단단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 우연히 갖게 된 꿈을 바라보며 실행하고 나아가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 예술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더구나 그 무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뉴욕이라면? 단단함 없이는 버틸 수 없다. 뉴욕에서 6년째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활동하고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삶이 증명한다.
“에센셜 한 게(기본적인 생활) 제일 힘들죠. 생존하는 것. 렌트 내고 밥 먹고. 저는 밥을 막 맛있게 안 먹어도 잘 살거든요. 그래서 그걸 가장 줄이고 경험비에 엄청 많이 많이 썼었어요. 근데 돈을 벌려면 또 제가 배우로서만 그 버는 수입으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예술인 비자 안에서 (할 수 있는) 안전한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을 해봤죠. 하다못해 제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까 친구의 연극 포스터도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스킬들을 다 동원해서 돈을 벌다 보면 번아웃이 빨리 오는데 또 그게 주는 기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버티면 또 버텨져요.”
외국인 배우로서 예술인 비자로 활동하는 것 또한 제약이자 원동력이다.
“(비자 체류 기간) 3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게 되더라고요. 뭔가 게으를 수가 없게 되더라고요. 사실 게을러도 되는데... 저도 되게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연기가 이렇게 안 되는데 내가 계속 이거에 붙잡아야 될까? 다른 걸 해보자’ 하고 마음을 돌렸을 것 같거든요.”
졸업 뒤 5년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연극, 영화, 실험적 퍼포먼스 등 무대를 가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인지 조금은 지쳐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예술계 안팎에서 산호 배우를 알아보는 눈이 늘고 있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노르웨이 상업 영화 ‘돈 행업’이 북유럽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잠시지만) 1위를 차지했고, 단역으로 참여한 손석구, 최희서 배우 주연 단편 영화 ‘베드포드 파크’가 2026년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큰 스타들과 함께 같은 이야기에 속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진짜 엄청 열심히 준비해 가고 싶었는데 그런 것도 값지게 봐주시고...(참여한) 촬영 현장이 하루 밖에 안 했는데도 거기서 만난 최희서 배우님, 또 감독님과의 대화도 그렇고, 그 안에서 제가 확신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 엄청 힘이 됐어요.”
그는 관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 같았다. 그런 점에서 카페 옆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친구, 동료가 될 수 있는 뉴욕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
“광대극을 같이 한 그 최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제 공연을 보고 그 QnA를 할 때 가장 손을 많이 들고 가장 질문을 많이 해줬던 친구예요. 그래서 제가 인상 깊게 기억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제 나중에 제가 또 창작을 하고 싶을 때마다 그 친구가 떠오르더라고요. ‘아 그때 질문 많이 했던 그 친구 참 궁금하다’. 그 친구가 아티스트가 아니었을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뭔가 만나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커피 한 잔 하자 했는데 그 사람도 배우였던 거예요. 필리피노 아메리칸인데 그래서 저랑 비슷한,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혼란도 있었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하다가 저희가 처음으로 광대극을 같이 올리게 돼요.”
“소호 플레이하우스에서 너무 재미있게 한 광대극인데 그때 이후로 제가 광대극에 엄청 빠진 거예요. 친구 덕분에 엄청난 성장도 하고 확장하고 또 초월하고.. 이런 과정이 그 친구 덕분에 많이 많이 생겼어요. 또 무대를 나를 위해 활용할 줄 알게 됐고요”
무대의 배우가 객석에 있던 다른 아티스트와 친구가 되고 둘이 시너지를 발휘해 또 다른 장르의 예술을 만들고, 서로의 외연을 확장해 가는 곳. 뉴욕에서는 예술가들이 그렇게 성장해 간다.
“너무 순수하게 말하는 걸 수도 있는데 뉴욕은 저를 무모하게 만드는 도시인 것 같아요. 그리고 떼를 좀 써도 될 것 같은 곳이에요. 약간 떼써도 떼쓰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지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아요. ‘아 나 힘들어’ 이렇게 앙탈을 부려도, ‘하기 싫어. 다른 거 해볼래’ 이래도 다 그냥 묵묵히 받아주는 도시 같아요.”
물론 그 안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자존심 부리지는 않되 자기 존중이 되는 사람, 그런 티가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현장에서도 제가 가지고 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하루하루 제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아우라가 변한다고 생각해요.”
“선택받아야 한다’, ‘선택받지 않으면 난 부족한 사람이다’ ‘이 기회가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가 잘못된 거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된다’ 어떤 자기 비난으로 빠지기는 너무 쉽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자기 하루하루 잘 사는 것만으로도 자기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고 너무 훌륭한 사람이고요. ‘저의 연기도 그런 훌륭한 사람이 드러나게만 할 줄 안다면 엄청나게 값지고 대우받을 수 있는 대배우다’ 이렇게 마인드셋을, 그렇게 명상하듯 연습해서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산호 배우의 본명은 강주은이다. 본명으로 활동하다 죽은 지층에서 새 생명체가 다시 살아나는 산호처럼 초심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최근 스스로 새 예명을 지으며 6년 연기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열었다. 매일 새로워지는 그의 모습, 깊은 눈빛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볼 날이 오리라 믿는다.
https://youtu.be/KIYx64Upmjc?si=DXak1v1t0NULXq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