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탁소 사장님은 어떻게 뉴욕 수백억 자산가가 됐나

'트럼프와 반상회' 부동산 투자자 배희남 회장님 부부

by 김수진

나는 요새 10만 원짜리 캐시미어 ALO 양말을 신고 잔다. 물론 내가 산 것은 아니고 선물 받았다. 이런 비싼 양말을 누가 살까 싶은데 뉴욕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 여기에는 비싸고 고급진 물건이 참 많다. 그런 걸 살 수 있고, 살만한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요즘 백만장자는 부자도 아니라지만, 뉴요커 20여 명 중 1명이 백만장자라고 하니 이곳의 수요와 공급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부동산 재벌 배희남 회장님을 통해 뉴욕 부자의 삶을 엿본다. 배희남 회장님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 중 최고 부자다. 골프 치고 크루즈 여행을 하면서 노년을 보내셔도 되겠지만, 젊은이들에게 맨해튼 최고급 하츠하나 초밥 도시락을 사줘 가며 미국 부동산 투자 강의와 멘토링을 하신다. 가끔 트럼프 월드 타워 자택으로 초대도 해주시고, 시간이 되면 벤틀리를 직접 운전해 집에 데려다주신다. (살면서 벤틀리 처음 타봤다!) 언젠가 회장님에게 전체 자산 규모를 계산해 보신 적이 있느냐고 여쭤봤는데 잘 모른다고 하셨다. 대답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러신 듯했다. 액수가 워낙 크기도 하지만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어서 정확한 액수로 환산하기도 어렵다. 다만 미주 한국일보에서 2023년 회장님을 인터뷰하면서 ‘6000만 달러의 사나이’라는 표현을 썼다. 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860억-890억 원 정도다. 이후에도 투자를 계속하고 계시니 자산이 더 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회장님은 “이제 일 년에 100만 불, 200만 불 더 버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자주 말씀 하신다. 매년 13억-14억 더 번다고 영향을 주지 않는 인생이 꿈같이 느껴지면서도 그 취지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배 회장님이 강조하는 것은 ‘cash flow(현금 흐름)’과 ‘financial freedom(경제적 자유)’다. 일상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만큼 매달 들어오는 ‘passive income(직접 노동 시간 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현금 흐름이 만들어지면 경제적 자유가 달성된다. 자유는 내 인생의 화두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사실상 경제적 자유나 다름없다.


배 회장님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한 건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다. 회장님은 30대 중반이던 1981년 미국에 오셨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운영하시다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코네티컷에 있는 대학으로 석사 공부를 하러 왔다. 박사까지 마치고 돌아가 교수가 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내 배명수 여사님과 6세, 7세 두 자녀와 함께였다. 두 분은 연세대 재학시절 시흥 수재민 텐트촌에서 교육 봉사를 하며 연을 맺었다. 신학대 재학 중이던 배 회장님은 수재민 동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해 중등학교를 열었고, 뜻을 같이 하는 대학생들이 선생님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시장에서 떼 온 군용 텐트 하나 친 천막 교실이 전부였다. 20대 초반의 청년의 기특한 행동은 당시 여러 신문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저는 친구가 봉사를 하자고 해서 갔는데, 친구가 저를 거기에 밀어 놓고 자기는 빠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신 진짜 좋은 선생님을 데려왔습니다’라고 저를 소개해서 거기 발을 들이게 됐죠.”


아내 배명수 여사님의 말이다. 1970년대에도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의상학과 멋쟁이는 천막학교 선생님이 됐고,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 대학을 졸업하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사실 뉴욕에서 지금과 같은 부동산 재벌이 되기까지, 특히 미국 생활 초반에는 배 여사님의 공이 컸다. 배 회장님이 학교에 간 동안 배 여사님은 생계를 책임졌다. 봉제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다가 세탁소에 테일러로 취직했고, 미드타운 양장점의 드레스 메이커로 이직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장점 주인이 주급을 계속 밀리더니만 돈을 주는 대신 가게를 인수하라고 권했다. 배 여사님은 그렇게 생각지도 않게 미드타운 양장점 사장이 됐다.


“영어가 안되니까 손님이 오면 반가운 게 아니라 가슴이 덜렁덜렁하고 무서웠어요. 이 사람(배 회장님)이 가방 들고 나서면 학교 가지 말라고 사정사정을 했죠.”


다행히 옷을 고치고 짓는 것은 말이 아닌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손재주는 금세 입소문을 탔다. 영화배우 율 브리너,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아시아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 우탄트 등이 유명인들이 옷을 고쳐달라며 찾아왔다. 배 회장님이 일을 도우며 서비스로 간간이 해주던 드라이클리닝을 요청하는 손님이 많아져 아예 세탁소를 같이 운영하게 됐다. 배 회장님은 차이나 타운에서 본 작은 보일러에 보석상에서 쓰는 스팀을 연결해 다리미를 개발해 세탁물을 다림질했고, 손님은 나날이 늘었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열 때면 손님 네다섯 명이 줄을 서서 ‘세탁소 오픈런’을 하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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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딱 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하늘에서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자세 덕분에 잘 된 것 같요.”


그러던 어느 날 세탁소가 입주한 건물 주인인 유대인 할아버지가 배 회장님에게 그 건물을 사라고 권했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 열심히 일하고, 가끔 건물 청소도 돕는 부지런한 젊은 부부를 기특하게 바라본 부자 노인의 선심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 가서 교수가 될 생각만 하고 있던 배 회장은 ‘건물은 무슨’, 오히려 화를 내며 제안을 거절했다. 그 노인은 그런 배 회장을 바라보며 “too bad”라며 여러 번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다 며칠 뒤 새파랗게 젊은 유대인 청년이 그 건물의 새 주인이라며 인사를 하러 왔다. 담배를 나눠 피며 ‘얼마에 샀냐’고 물으니 “거거 주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뉴욕의 건물주가 된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또 찾아왔다. 이번에는 단골손님이던 부동산 중개인 유대인이 건물을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건물 지하에 세탁소 시설을 차리고 복작복작 가게를 운영하던 배 회장 부부가 답답해 보였던 것이다.


“싸게 나온 건물이 있으니까 가보자고 하더라고요. 57번가, 세컨드 에비뉴에 있는 4층 건물이었어요. 당시 장사가 잘 돼서 돈은 조금 있었거든요.”


건물 가격은 140만 불. 배 회장님이 수중에 가진 돈은 20만 불. 30만 불은 셀러에게, 90만 불은 은행에서 이자 17%를 주고 빌렸다. 클로징(계약 마무리)하는 날 변호사, 세무사, 부동산 중개인 등등이 한 자리에 모여 요란하게 서류를 검토하는데 배 회장의 가슴은 요동을 쳤다. 이자 17%를 내고 돈을 빌려서 건물을 사는 게 맞는 일인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미친척하고 ‘죄송합니다. 내가 돌았습니다’하고 무르면 세상 걱정이 다 없어질 것 같더라고요.”


밖에 나가 머릿속이 핑 돌 때까지 담배 두 개비를 태우고서야 계약서에 서명할 용기가 났다. 그렇게 그는 뉴욕의 첫 건물주가 되었다.


그 뒤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세탁소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 맨해튼에만 20여 채의 건물을 소유하고 계시고,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등 다른 주에서도 여러 부동산 프로젝트에 투자를 하고 계신다. 16년 전부터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투자 강의도 하고 계신다. 유대인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을 거머쥐고 있는데 똑똑하고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이 뭉친다면 그 이상으로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확신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 훨씬 똑똑하고 자세도 돼 있어요. 나는 어렵게 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우리 후손들이 조금만 하면 맨해튼에서 (부동산 점유) 65%,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30%, 우리 한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예요.”


수재민촌 천막 학교부터, 영어 학원, 그리고 뉴욕의 부동산 투자 강의까지. 내가 보는 배 회장님은 천상 선생님이다. 좋은 뜻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든 나누고 싶어 하는 선생님.


내 인터뷰가 그 뜻을 더 널리 나누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https://youtu.be/oJiJvBaXTmE?si=wqP-E8AIEAwGSoQ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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