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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익상 Jul 23. 2023

무궁화호에서 객실 이동하기

에세이

굳이 무궁화호를 오랜만에 느껴 보겠다는 복고 갬성으로 새벽 첫차를 탄 지 10분. 나는 깨닫는다. 어,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 객실 안에 풍기는 냄새가 심각하다. 창문도 없는 객실에서 새 버스+화장실+기름기 등등이 섞인 냄새를 맡으며 장장 6시간을 가야 한다니. 여기까지, 개인 감각과 감상.


인터넷 시대의 개개인은 자신이 느낀 감각을 확인하고 토로하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한다. 모바일 시대라면 그 과정은 즉각적이다. 나만 해도 바로 스마트폰 브라우저를 통해 구글에 검색어를 넣었다. “무궁화호 냄새“ 검색 결과가 좍 나열되고 그곳에는 불평 토로부터 팁까지 다양한 타인의 게시물이 링크되어 있다. 그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을 눌러 타고 들어가,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구한다.


정확히 위 과정을 거쳐, 오늘의 나는 객차마다 냄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신형인 객차가 괜찮고 신형과 구형은 천장 조명만 봐도 판단 가능하다. 역시 내가 탄 2호차는 구형이었고 나는 이제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짱구를 굴린다. 여기를 빠져나가 신형으로 옮길 방법은 없는가?


3호차는 어떤가 한번 들어가서 보니 냄새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훨씬 낫다. 조명을 보니 최신형은 아니지만 구형은 아니다. 새벽 첫차라 자리도 많다. 마침 정차역 주변이라 승무원이 눈에 띄어 자리를 옮길 수 있는지 물어 본다. “냄새가 많이 나서예, 일루 좀 옮기도 대겠습니꺼.” 승무원이 표준어로 답한다. “아, 네, 그렇게 하세요.”(아차, 부산발이라고 부산 분일 리가 없는데!)


일단 자리를 옮겨 아무 데나 앉아 있으니 승무원이 다가와 좌석 변경 절차를 밟아준다. 서울까지 쭉 비는 자리는 없을 수도 있다는 안내와 함께 수속 중에 문득 묻는다. “무슨 냄새가 나던가요?” 나는 검색 결과에서 냄새를 설명하던 말로 가장 동의할 수 있었던 걸 골라 답한다. 이번엔 서울말로. “기름 냄새가 심하더라고요.” 다행히 서울까지 비어있는 좌석이 있어서 자리를 겟. 객실 이동 영수증도 겟. 나는 이제 버틸만한 자리에 앉아 애초 희망했던 복고 갬성을 만끽한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 내의 동지들을 떠올린다. 내게 정보를 제공해준 무궁화호 이용자들과 그들의 커뮤니티들. 그 덕에 나는 이런 쾌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객차 변경이 가능하다는 리빙포인트라도 하나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SNS 세계에서 I에 가까운 나는, 익숙한 페이스북에 이 이야기를 올리기로 한다. 아마 아주 간단하게만 정리해서 트위터나 블루스카이에도 올리기야 하겠지. 또다시 문득 깨닫는다. 인터넷과 개인화된 모바일 디바이스의 존재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캣츠랩 박승일 소장의 최근 칼럼​에서 고개를 새차게 끄덕이며 되새겼었지.


밀양역 즈음에서 글을 마무리하며, 철덕에는 미치지 못한 복고 갬성 무궁화호 유저는 생각한다. 열차와 열차 여행은 꽤 자주 사회의 유비로, 인생의 유비로 호출되곤 하지 않던가. 오늘의 불편 발견, 인터넷 접속, 민원, 객실 이동 등은 어떠한가? 설국열차 같은 세계는 아니라도 역시 뭔가 생각볼 거리는 있는 것 같다.




번외로, 오늘의 경험에서 모바일 인터넷이 다시 경험하도록 만든 현실을 AR이라 불러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함. Augmented 혹은 Applied Reality 아닌가? 그러니만큼 인터넷 세계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물론 다시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걸 ‘공론장’이라고 감각했던 복고 갬성도 재논의의 필요와 별개로 이해가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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