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아닌자리

2014년 12월 30일의 꿈 이야기

by 조익상

끔찍한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끔찍함은 그걸로 겨우 시작했을 뿐이었다. 어느 체육관 안에서, 교관과 훈련받는 군인들 사이에 혈투가 벌어졌다. 꿈은 꿈이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는 생략되었다. 그것은 그저 꿈 속 현실의 전제였고 조건이었다. 그리고 전개는 무지막지했다. 혈투는 순식간에 살육이 되었다. 나는 때로는 주인공 시점에서 때로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그 모든 살육을 지켜보았다. 살육이 촉발한 끔찍함의 연쇄를, 증폭을, 꿈에서 깨어난 나는 짧게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먼저 끔찍했던 것은, 나도 살육을 직접 저질렀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처음 '썰어서' 죽인 이는 교관들 가운데 가장 악질인 누군가였다. 그러고도 나는 몇을 더 썰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꿈속에서 그것을 끔찍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 깨어난 후에야 지각한 또다른 끔찍함의 이유이다. 꿈이련만, 꿈 속에서 칼을 들어야만 할 이유가 있었으련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을 느끼지 않았다. 처음 죽일 때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으나 그 후론 당연하게 또 자랑스럽게 살육을 몸소 저질렀다. 꿈 속 내 렌즈에 포착된 나의 얼굴은 나찰보다 더한 섬뜩함을 품고 있었다.


렌즈를 꿈 속 장면 곳곳에 가져다대는 전지적 관찰자였기 때문에 꿈에서 깬 후 느낀 끔찍함은 더 컸다. 내 렌즈는 온갖 살육을 원경과 근경으로 담았다. 카메라의 성능은 엄청난 것이어서 필요하다면 원근경을 동시에 담기도 했다. 핏방울과 축생도를 모두, 내 정신의 카메라는 필름에 새겼다. 그 모두는 차마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끔찍함이었다.


게다가 나는 '전지적' 관찰자였다. 누군가의 칼이 다른 누군가의 살 속으로 들어가 박힐 때, 나는 두 익명의 감각을 모두 감각했다. 찔렀기에 두려웠고 찔렸기에 아팠다. 계속 찔렀기에 쾌락을 느꼈으며 계속 찔렸기에 전존재의 함락을 경험했다. 그 모든 감각은 실로 끔찍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야 지각된 감각이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것은 꿈의 말미에 감각되었다. 그 모든 살육이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한 만화를 보면서였다. 그 만화의 작가는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우리 중 하나였다. 그는 가장 많이 떨었던 이였고 누구도 죽이지 못했던 이였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을 떨면서 거부한 가장 용감한 이가 그였다. 그랬던 그가 후에 만화로 살육을 재현했다. 만화는 언어보다 훨씬 더 큰 능력으로 그 살육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 모든 끔찍함이 거기에 담겨있었고 나와 동료들은 그것을 보며 괴로워했다.


내가 소스라치며 일어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만화를 그린 '그'가 그 경험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만화를 통해 감각하며, 나는 가장 큰 끔찍함을 느꼈다. 그의 작가적 고뇌는 그 지옥을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방식으로 핍진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만화는 떨면서 용감하게 그 장면 하나하나를, 전지적 관찰자 '나'만큼이나 소상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꿈 속의 나에게, 기억을 되살리는 그는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그것을 그렇게 그려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를 괴롭히는 악마!! 그렇게 우리는 그를 저주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가장 큰 끔찍함을 느끼며 꿈에서 빠져나왔다. 꿈은 제 역할을 다했다는듯 나를 놓아주었고 나는 꿈의 역할을 이어받아 그 끔찍함을 되새겨야 했다. 그 꿈은 너무나 많은 것을 의미심장하게 은유하고 상징하는 알레고리였기 때문이다. 그 지옥에서 건져올린 것으로 별자리를 만들어, 나는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 그것이 그 모든 끔찍함이 가지는 한 의미일 것이므로. 이름을 붙여야만 그것은 기억될 수 있을 것이므로.


꿈이아닌자리.


이 별자리를 기억하는 것이 끔찍한 한 해를 보내는 꽤나 끔찍한 방식이 될 수 있으리라. 적어도 나에겐. 악마가 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고 끔찍함을 직시해야만, 그래야만 나는 인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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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0일에 페이스북에 써둔 꿈 이야기. 그간 한번도 보지 못하다가 11년이 지나서야 발견했고, 그때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꿈이아닌자리는 기억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이 꿈의, 이 글의 배경 서사였을까? 11년 전 나는 꽤나 심오한 고민에 잠시나마 사로잡혔던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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