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수 없어진 글 아카이브
정직하고 정확하기 위해,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분명히 한다. 내가 가족과 함께 있는 장면이나, 나의 의심과 두려움 그리고 약점을 그린다면, 이는 내가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커다란 진실(LA Vérité)을 밝히는 것이 내 의도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내 작품을 읽는 독자가 시범을 따르듯 외부에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독자가 나와 함께 있고, 내 어깨 너머로 보기를 원한다.
(중략)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차원에 만화가 있다. 이것은 단지 이야기에 대한 보조적 수단이 아니다. 나는 위협을 표현하기 위해 모순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전원적 이미지와 방사능 측정기에 표시된 불안한 수 사이의 대조. 진실(La vérité)은 둘 사이의 간극에 있다.
그저 작가와 함께 체르노빌로 함께 떠난다는 기분으로 한 장 한 장 책을 넘겨보자. 그러면 작가가 처음 체르노빌에 가던 때의 선입관, 정보 등 마음속에 있는 감정에서부터 마을에 들어가 주민을 만났을 때의 낯섦, 두려움, 자연과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 등 작가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감상하기에 적절한 방법을 택했던 탓에, 여전히 체르노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최호철의 『체르노빌의 봄』 추천사
A: 기차 장면(5~9쪽): 실제 시간으로는 2008년 4월
B: 어린 시절 장면(10~19쪽): 실제 시간으로는 1986년 4월
C: 체르노빌에 가기까지(28~34쪽): 실제 시간으로는 2007년 11월 이후
만화 비평 웹진 『크리틱엠』에 실었던 당시의 각주는 모두 생략했다. 『크리틱엠』은 2015년 5월 즈음 시작하여 2016년 6월 즈음 마지막 이슈가 발행되었다. 관련하여 오혁진의 글 "망각된 『크리틱엠』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http://dml.komacon.kr/webzine/column/28448 는 흥미로운 논점을 담았으므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