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랑 아빠랑 ep.09
12월이 되었다. 굉장히 날씨가 쌀쌀하다. 일교차가 심해지고, 12월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예상된다는 날씨도 봤다. 대비를 해야겠다. 나의 딸 단아의 첫 겨울이 되고 있다. 아내가 물심양면(物心兩面) 준비를 하긴 했다. 겨울 옷도 여러 벌 구매했고, 옷 전체가 하얀 털이 달린 플리스 겉옷과 털모자도 준비를 했다.
그래도 아이에겐 겨울이 처음이기 때문에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 차가워진 공기, 꽁꽁 싸맨 두꺼운 옷, 북적이던 동네에 조금씩 사라지는 사람들, 텅 빈 거리, 검은색으로 물든 옷가지들이 모두 낯설게 분명했다. 계절이 변했다는 건 아이도 분명 그 시간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2월 겨울에 태어났는데 300여 일 지나 다시 겨울을 맞이한 것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몸짓만 한 쿠션에서 하늘만 보던 아기였는데.. 물론 지금도 분명 아기지만:) 쿠션보다 더 커져버린 딸을 보면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대견스럽다.
300일 동안 잘 자라줘서 고마워 딸:)
그렇게 단아는 짧은 가을을 지나 겨울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엔 첫눈을 맞이하기도 했다. 흩날리는 눈이어서 만질 수도 없었지만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단아의 모습을 보면 순수한 아이의 호기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른의 눈엔 예쁜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올 겨울 첫눈이지만 미세 먼지를 동반한 눈이 반가울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이는 아이다. 겨울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딸 단아를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지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가 엄청 자랐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바로 매일 저녁 치러지는 거사 '목욕'시간에 말이다. 목욕은 단아를 처음 맞이한 이후로 줄 곧 아빠인 내가 담당했다. 아빠가 목욕을 담당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아내의 산후 관절통 예방이 필요하다. 육아 내내 '온몸 관절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데 가장 안쓰러운 부분이다. 예방은 이미 늦었지만 목욕만큼은 '아빠'가 담당하는 게 좋다.
둘째, 오롯이 아빠와 아이 사이에서 '믿음'이 쌓이는 시간이다. 철저히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안전하게 머리도 감겨야 하고, 몸을 이리저리 가눌 수 있어야 하는데 아빠이기 때문에 수월하게 진행된다.
셋째, 아이와의 유대감 형성에 좋다. 목욕하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 20분 남짓 동안 온몸을 만지게 된다. 손으로, 몸으로, 미끈하게 스킨십을 하게 된다. 딸 단아는 저녁 목욕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아무튼, 매일 목욕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 '휴대용 욕조'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동안 자라면서 두 번의 욕조 크기를 바꿔가며 사용 중이었다. 그런데 단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성장했다. 키가 컸고, 몸이 커진 것이다. 욕조가 작아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장구 한 번 치면 온 사방이 물 바다가 되고, 엄마와 아빠의 옷은 이내 흠뻑 젖기 일쑤였다.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육아 초보인 아내와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검색을 했고, 앞서 나가는 육아 선배들의 일상을 찾아가며 힌트를 얻었다. 저마다 육아 방식은 다르지만 분명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박 아이템을 발견했다. 걸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서서 지탱할 수 있는 정도의 튼튼한 다리를 갖고 있는 단아였는데 마침 서서 샤워할 수 있는 거치대를 찾게 된 것이다. 물론 이미 국민 템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육아 기구였다. 아기의 몸을 편하게 감싸줄 수 있는 팔걸이가 있어서 아이를 세운채로 샤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똑똑하게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것 같다. 없는 게 없으니까..:)
샴푸 캡을 머리에 씌우고, 목욕 거치대에 딸을 고정시켜 순조롭게 첫 목욕을 했다. 매번 누워서 목욕을 하다가 똑바로 서서 목욕을 처음 해본 것이다. 단아는 너무 즐거워했다. 물을 좋아하는 단아는 정말 제대로 '물'을 만났다. 놀이가 된 것이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신기하고, 벽에 붙여진 스펀지 인형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목욕하는 내내 아내와 나는 여전히 물이 튀어 흠뻑 젖기도 했지만 세 사람이 물장난을 하듯이 색다른 목욕 시간이 되었다. 볼록한 배, 두터워진 허벅지, 탱탱한 엉덩이를 뽐내는 단아를 영상으로 사진으로 담기에 바쁘기도 했다.
유난히 늦은 시간이었다. 딸고 아내는 이미 침실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육퇴를 하고 나는 서재에 자리를 잡았다. 세상 조용히 소리 없는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던 중 결국 오늘 저녁 '목욕' 사진을 정리했다. 언제 이렇게 또 컸는지 매일 되뇌는 중이지만 처음으로 일어서서 목욕을 하는 딸의 모습이 새롭게 느껴졌다. 1분 정도 되는 영상 속에 비친 단아는 내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양손에는 스펀지 인형을 꽉 쥔 채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소리와 들리는 딸의 옹알이가 유난히 신비롭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을 흘렸다.
놀랐다. 매일 그리고 종일 만나는 딸의 모습인데 갑자기 왜 눈물이 나는 거지? 태어났을 때 처음 마주했을 때도 울지 않았던 기억이 나면서도 알 수 없는 나의 감정이 낯설었다. 영상을 다시 한번 돌려봤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목욕을 즐기는 딸을 보았다. 감정은 그대로, 솔직했다.
나는 감동받았다. 부모가 되었고, 부족한 아빠였다. 하지만 딸은 2월 겨울에 태어나,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했다. 다섯 번째 계절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되던 갓난아이가 어느덧 걷기 전까지 성장했고, 사물을 인지하고, 엄마 아빠를 응시하고, 반응을 했다. 매일 저녁 목욕을 즐기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잡으려는 딸, 그 순간들의 모습이 대견하고, 감동이었다.
나도 아빠가 되는 건가? 이런 게 아빠, 부모의 마음인지 모르겠다. 그냥 기쁘고, 설렜으니까 말이다. 사실 아내는 자주 눈물을 보이는 편이다. 단아의 새로운 행동이 신기해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넘어지면 울고, 예뻐서 울고 극강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내와 비교하자면 나는 굉장히 평범했다. 충분히 공감하고, 기쁘고, 웃기도 하지만 눈물까진 아니었다.
그런 내가 '눈물'을 흘렸다.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아내도 딸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달라져 가고 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지켜야 할, 아끼고 함께 인생을 살아가야 할 가족이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아니 내 인생에서 너무나 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커나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딸의 성장을 보며, 나 또한 작지만 한 뼘 정도 커진 느낌이다.
겨울이 더 반가워졌다.
우리는 왕조시대
왕조시대 Jr. 단아를 응원합니다.
instagram, @baby.wangjo.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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