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공간이 나를 밀어낼 때

불편함을 기록합니다.

by 왕태일

너의 공간이 나를 밀어낼 때,


아침 7시 40분, 출근길 지하철
여전히 붐비는 시간, 숨소리와 체온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이동한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달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빠른 환승을 위해 4-3에서 기다렸다.금새 달려온 지하철 문이 열린다. 나는 문 쪽 손잡이 근처에 서 있었다. 몸은 이미 익숙한 리듬에 맞춰 흔들림을 흡수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공기가 답답했다.


BIG BOY,

어깨 너머로 무언가가 계속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돌아보니 한 남자의 백팩이 내 가슴께를 꾸준히 눌렀다.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그 무게는 더 단단하게 내 쪽으로 밀려왔다. 순간, 생각이 스쳤다.


‘왜 저걸 벗지 않을까?’ 42cm 정도의 비교적 적당한 검정색 포터 가방을 멘 나도 전철에서 크로스로 둘렀는데 말이다. 좁은 공간에서의 예의나 배려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인가 싶었다. 백팩 하나가 공간의 질서를 바꾸고 있었다. 가방의 크기보다 더 무거운 건, 그 무심함이 만들어내는 공기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가방을 바라보다,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참지는 않았다.
내 오른쪽 어깨를 살짝 틀어 그 가방의 움직임을 막았다. 지하철의 흔들리는 리듬에 맞춰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백팩의 동선을 사전 차단 한 것이다. 내 팔꿈치와 몸 사이에 벽을 만들듯 공간을 더 좁혀갔다. 그가 조금씩 불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내 자세는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무게를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쳤다 —

싸움은 아니지만, 경계는 분명했다. 말 대신 행동으로 전해지는 불편의 신호. 그 짧은 밀고 밀림 속에서 나는 인간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백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본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공공의 공간에서는 그 본능이 타인의 숨을 막기도 한다. 지하철은 좁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누군가는 배려를 잃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균형을 잡는다. 나는 그 순간을 관찰했다.


백팩의 주인은 불편함을 인지한 듯 몸을 틀었다.
잠시 공간이 넓어졌고, 숨통이 트였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터널 벽, 그 사이로 반사된 내 얼굴이 보였다. 침묵 속에서도 내 표정은 묘하게 단단했다. 말하지 않아도, 내 행동이 내 자리를 지켜준 것 같았다. 출근길 직장인들로 붐비는 상태였기 때문에 왼쪽에 있던 사람도, 가까이 붙어 있던 그들도 안정적인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불편함은 늘 관계의 언어로 다가온다.
어떤 이는 말로, 어떤 이는 표정으로, 그리고 나는 오늘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옳은 방식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내 감정은 숨지 않았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말을 아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불편함을 감추는 대신, 그 불편을 스스로 다루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을지로4가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우르르 내렸다. 내 앞의 그 남자도 무심히 걸어 나갔다. 백팩은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걸려 있었지만, 오늘의 그 무게는 아마 조금 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누군가의 무심함을 탓하기 전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너의 공간이 나를 밀어낼 때,
나는 비로소 내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그 작은 불편함을 감정으로 풀지 않고, 행동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조용한 성숙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기록은 그래서 조금 다르다. 나는 침묵했지만, 결코 참지 않았다. 조금은 유치했지만..불편을 감당하는 내 방식이, 누군가의 무심함보다 단단하길 바라며 이 문장을 남긴다.


「불편함을 기록합니다」

EP. 02 너의 공간이 나를 밀어낼 때


왕태일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