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기록합니다.
아침 8시 50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마주치는 사람들, 이름은 모르지만 표정은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보는 사이. 낯설지 않지만 친하지도 않은 관계, 그 애매한 거리감이 나를 매일 같은 고민으로 이끈다. ‘오늘은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될까?’ 이 단순한 질문 하나가 생각보다 복잡하다. 입술은 열리려다 닫히고, 시선은 잠시 머물다 피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 짧은 망설임이 공기 중에 퍼진다. 안에는 다섯 명이 서 있었지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의 휴대폰 화면 속 세상이 현실보다 더 안전한 공간처럼 보였다.
‘나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그건 ‘나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조용한 신호였지만, 누구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 눈이 마주쳐도 인사는 없었다. 다만, 각자의 눈빛이 잠깐 닿았다가 흩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있었다. 묘한 온도의 공기, 가볍게 숨 막히는 거리. 그 안에서 나는 혼자서만 예의를 지키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인사를 해야 예의 있는 사람이고, 하지 않으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회.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인사는 예의이기 이전에, 감정의 리듬이다. 리듬이 어긋나면, 그 한마디는 의무가 되고 피로가 된다.
사람들은 흔히 “인사는 기본이잖아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기본을 유지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하루를 버텨야 하는 마음, 감정을 감춘 채 서 있는 시간, 낯선 관계 속에서 유지해야 하는 거리. 그 안에서 인사는 감정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밝은 표정과 가벼운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선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여유가 없는 아침, 감정의 문은 닫혀 있다. 그래서 그 한마디가 유난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아침마다 “안녕하세요~"만큼은 가장 우렁차게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영업팀, 광고팀, 팀장님, 임원 분들까지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인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사회적 신뢰의 첫 단추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내 인사에 답하지 않는 얼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인사를 해도 돌아오는 건 고개 끄덕임이나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무표정이 내 인사를 조용히 닫아버렸다. 어느새 내 목소리는 작아지고, 표정은 중립으로 굳었다. 인사라는 행위가 점점 ‘나 혼자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매일 만나는 얼굴, 매일 듣는 목소리, 철야라도 할 때면 몇 시간 뒤에 만나기 때문에 '익숙함'에 '인사'는 그저 형식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그래도 '인사'는 신뢰의 첫 단추이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지 않았던가. 그 단순한 진리를 알면서도, 조금 씩 나 또한 인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주저하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마음속에서는 작은 죄책감이 자라났다. 그것은 예의의 문제라기보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행동’이 만들어낸 회피였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 아닌가.
예의하면 동방예의지국이며, 대한민국은 '친절'의 나라 아닌가.
또 같은 얼굴을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침묵이 흘렀다. 둘 다 휴대폰을 보는 척했지만, 화면은 흐릿했다. 마음속에서는 서로가 존재했다. 그 침묵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서로의 불편을 감춘 방어였다. 층수가 바뀔 때마다 ‘딩’ 소리가 울렸고, 그 간격이 우리 사이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사가 어색한 이유는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반응을 두려워했고, 거절당할 가능성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피함 속에서 불편은 더 자라났다.
인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존재의 확인이다. “당신을 인식하고 있습니다”라는 짧은 신호.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신호를 귀찮아하고, 생략하며, 효율의 이름으로 감정을 줄이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요’라는 말이 편리함의 명분이 되었고, 관계는 점점 감정 없는 소통으로 변했다. 말 대신 이모티콘, 인사 대신 메시지, 표정 대신 기호가 남았다. 감정은 전달되지만, 온도는 사라졌다.
오늘 아침,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얼굴, 같은 공간.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기로 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눈이 마주쳤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좋은아침이에요 :)”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인사라는 행위가 나를 먼저 움직이게 했다. 상대는 약간 놀란 듯 고개를 들더니, 잠시 멈칫한 후 짧게 웃으며 답했다. “안녕하세요.” 단 세 글자의 교환. 하지만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공기가 조금 더 맑아지고, 분위기가 가볍게 풀렸다. 그 미묘한 변화 속에서 나는 느꼈다.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면 방향이 달라진다.
인사는 여전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색함이 관계의 시작이라면, 나는 오늘도 그 짧은 순간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불편함은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그 불편을 감당하는 태도가 관계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말 한마디로 바뀌는 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나는 여전히 어색함을 느끼지만, 그 어색함을 견디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인사는 그래서 불편하고, 동시에 인간적이다.
짧은 인사에 긴 마음이 담긴다. 그것은 예의가 아니라,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인사는 상대의 반응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의 태도를 확인하는 행동이다. 내가 먼저 인사할 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내 하루의 공기는 달라진다. 관계의 시작은 늘 그렇게 작고 사소한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기록은 그 작은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다. 인사는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 어색함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서로를 배워간다. 불편을 피하지 않고, 어색함을 감수하는 그 짧은 용기가 결국 관계의 온도를 바꾼다.
「불편함을 기록합니다」
EP. 03 인사가 어색한 사람들
왕태일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