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 삶까지 다 알고 있는 존재라면 아마 신이겠지요. 그러니 이 편지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신에게 쓰는 편지가 됩니다. 저는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불가지론자라 생각해 왔었는데 불가지론자도 엄밀히 말하면 유신론자에 가깝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아마 저도 모르게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쓰는 편지일 수도 있겠어요.
어렸을 땐 억지로 신앙을 가져보려 새벽기도, 수요 예배, 금요 철야 예배, 주일 예배까지 챙기며 교회에 열심히 다녀봤는데 결국 신앙이 생기지 않아 포기했어요. 아주 가끔 내 인생은 이미 설계되어 있고 나는 누군가 설계해 놓은 그 길을 따라 걸을 뿐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 누군가가 신이라면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나의 소명과 쓰임은 무엇이냐고.
사주에서는 원래 제 팔자가 ‘약자를 위해 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사회 활동가’라 하더라고요. 정확히 그 길은 아니지만 언저리 어딘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때 ‘신이 나를 만들 때’라는 테스트가 유행했었는데요. 저를 만드실 때 실수로 연민을 너무 과하게 넣어주신 게 아니신지.. 아니면 오히려 사랑해서 듬뿍 넣어주신 것인지.. ‘참을성’은 적정량보다 적게, ‘연민’은 적정량을 초과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유난히 슬픈 영화를 보면 힘들어하고, 드라마 속 캐릭터와 헤어지는 것도 힘들어하고, 고등학생 때는 수업시간에도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비극이 계속 생각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슬픈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못해요.
지독한 연민은 어떻게든 새어 나오고 싶은지 히어로물 영화를 볼 때도 기어코 말썽인데요. 히어로물 클리셰인 야외 액션씬이 펼쳐질 때 저는 그 주변에 있는 상인들이 걱정돼서 영화를 잘 못 봐요. 왜 자꾸 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소매상들의 업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 건지.
실수로 더 주신 연민은 어떻게, 환불이 안될까요
202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