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찾아온 별에서 쓰는 독서노트
자유주의자들은 시장 경쟁을 통해 승리한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들이 창의성과 노력을 발휘하지 않고 나태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물질적 이득만을 보상으로 상정하는데, 물질적 이득이 보상의 척도가 된 것 자체가 바로 금전이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돈이 중요한 가치가 아닌 사회에서는 명예를 얻거나 존경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이 노력하고 행동한다.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고 물질적 이득이 주어지기 어려웠던 전前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창의성과 노력을 발휘했다. 지금은 거의 시장화되었지만, 인터넷이 처음 보급되던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 없이도 단지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는 즐거움을 위해 자기 작품들을 공유하곤 했다. 이런 노력과 성과는 경쟁이라는 과정 없이도 나왔다.
내가 나의 묘비명을 정할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렇게 쓸 것이다. '잘못 왔다 간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 잘못 온 것 같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는 삼십 년 이상을 이 시대에서만 살아왔는데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든 세상에 적응해 보려 나를 죽여왔을 것이다. 본래의 나는 어디 있을까. 가끔씩 생각한다. 다중우주 속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면, 지금 여기 자본주의 아래에서 내가 받는 고통만큼, 당신은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고 편했으면 좋겠다고.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는 나지만 그런 나 조차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높은 확률로 자본주의 내에서 죽을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상자 바깥에서 생각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어렵다. 상자 안에서나마 할 수 있는 생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노동을 줄이고 호모 루덴스로, 놀이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자기 착취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