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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Aug 23. 2023

치카노 배트맨

꿈에 대해서

10년도 더 전이다. 나는 당시 문학과정 석사를 밟고 있다, 영주권 때문에 잠깐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아빠의 집에서 지냈다. 방학기간 약 두 달 동안 아빠의 집에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보통 이렇게 잠깐의 여유 기간이 생기면 나는 보통 책을 읽었다. 매일 동네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을 내리 책을 읽다, 공원이나 바닷가로 자리를 옮겨 또 책을 읽는 식이다. 그때는 스타벅스에 갔다.


하루는 평소처럼 스타벅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 자리의 히스패닉 남자가 말을 걸었다.

“나 너 본 적 있어. 너 우리 집 건너편에 살지?”

본 기억이 없었다.

“놀러 온 거야?”

아빠를 보러 한국에서 잠깐 왔다고 했다. 그러자 자기는 음악을 한다고 했다. 그제야 밤마다 들리던 드럼 소리며 기타 소리가 떠올랐다. 아, 그 집.

커피도 시키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작업을 하는 중이라 했다. 그래도 커피 한 잔은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자기에게는 그럴 의무가 없다고, 커피숍은 그러라고 있는 거라는 식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뻔뻔한 거지근성이군,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 읽어? 맨날 책 읽고 있더라.”

“응, 책 읽는 거 좋아해.”

무슨 작업을 하던 중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밴드 로고를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밴드 이름은 치카노 배트맨. 로고도 배트맨 로고. 색과 세부적인 디테일만 다를 뿐, 타원형 안의 박쥐 모양은 똑같은데. 이거 너무 비슷하지 않냐고, 이러면 안 되지 않냐고 했더니 여기가 다르고 여기가 다르다고 진지하게 반박했다. 나는 또, 독창적이지 않군,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에 어느 집에서 공연을 하는데 놀러 오겠냐고 나를 초대했다. 친구도 없고 심심하던 차라 가겠다고 했다.  

에두아르도는 보컬이었다. 음악이 좋았다. 연주도 멋졌다. 특유의 남미 리듬과 멜로디가 톡톡 튀면서 동시에 모던하고 캐치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즉흥연주가 오래 이어졌는데, 그 연주를 듣고 있는 것도 좋았다. 집주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얘네 진짜 잘하지?”

“응, 진짜.”

“언젠가 성공할 거야.”

그럴지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는 하얀 러닝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약간 후줄근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앞집에 살아서 그 이후로도 자주 보았다.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가기도 하고, 가족 점심 모임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홈메이드 타코는 정말 맛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 했더니, 쓰라고 했다. “가사를 쓰는 건 어때? 내가 멜로디를 만들 테니 가사를 한 번 만들어 봐.”

“가사는 너무 시적이잖아. 나는 좀 더 소설 쪽인데.”

“한 번도 안 해봤잖아? 해 보면 잘할지 모르지.”

얼마 안 있어 나는 한국으로 출국했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약 3년 후. 나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 진학에 실패했다.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아빠와 함께 이사를 했고,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 박사 과정에 한 번 더 지원해 볼 생각이었지만 실패가 너무 썼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때 나는 NPR의 Morning Becomes Eclectic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호스트 Jason Bentley의 선곡이 완전 나의 취향 저격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출근길, 평상시처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익숙한 리듬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카노 배트맨이었다.


3년 동안 나는 학자가 되려는 꿈을 꾸다 접었고, 그들은 메이저가 되었다. 그들은 라디오 인터뷰를 했고, 할리우드 볼에서, 코첼라에서 공연을 했다. 여전히 흰 민소매 면티를 즐겨 입는 보컬 에두아르도는 이제 더 이상 후줄근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이 그와 나의 3년 후를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 역시, “한 번도 안 해 봤잖아?”다.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들은 그들의 음악을 계속했다.


그로부터도 7년이 더 흘러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영문학 박사과정은 아예 포기했다. 전업주부로 산지 이제 4년이다. 일 년 정도 더 지나면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할 생각인데, 무엇을 할지를 고민 중이다. 그런데 아무리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어도,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블로그든, 어떤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그래서 이제야 조금씩 끄적이기 시작했다.


글은 마음대로 써지지 않고, 수준 낮은 글들에 얼굴이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을 때, 나는 에두아르도를 생각한다. 그의 집 앞마당에서 나눈 짧은 대화를. 그가 보여주었던 새로 쓴 가사들을. 스타벅스에서 본 촌스러운 로고를. “안 해봤잖아?”라고 되묻던 순간의 그의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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