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여섯 살 씨앗반 시든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 …

by 우리의 결혼생활

나는 여섯 살 씨앗반 시든이다.


어느 따뜻한 봄날 농부들이 땅속에 나를 심어주었고, 씨앗반 친구들과 함께 땅속반으로 등반되었다.


서로서로 처음 본 얼굴들도 있어서 조금은 어색했지만 씨앗반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 있어서 괜찮았다.


“안녕 친구야, 나는 씨앗반에서 온 시든이라고 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 씩씩하게 시든 이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농부선생님께서 지금은 봄이라 씨앗반과 땅속반은 합반수업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시든 이 옆에 있는 친구는 눈을 크게 뜨며 한마디 했다. “ 가을이 오면 우리는 땅속반을 졸업하고, 열매반으로 가는데 그때는 모두 모여 멋지게 사진촬영도 할 거야. ”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가을이 너무너무 기다려진다며 손뼉을 쳤다. 시든이는 두 손이 빨개지도록 손뼉을 쳤다.


시든이는 농부선생님을 좋아한다. 우리를 위해서 간식도주시고 점심시간에 개미들이랑 나비들이 놀러 와서 떠들어도 신나게 놀게 허락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인사도 잘 받아주신다.


여름이 왔다. 너무 덥고 땀이 줄줄 났다. 시원한 물을 농부선생님이 주셔도 금세 목이 말랐다.우르르 쾅쾅 하늘이 갑자기 캄캄해졌다. 소나기보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어쩐지 어제부터 농부선생님들이 분주해 보이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이불도 덮어주시고 안전하게 작은 돌들도 주변에서 치워주시고 컨디션은 어떠냐며 건강도 살펴주셨다. 친절한 선생님이 계셔서 감사했다.


사실 시든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친구들은 나의 장래희망을 발표할 때 자기의 꿈을 가지고 있는데 시든이는 꿈이 없을 뿐 아니라 나는 무엇을 잘하는 지도 잘 모르고 있는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자꾸만 작아지는 날이면 시든이는 농부선생님께 상담을 드렸다.


“선생님 저는 대체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요?

눈도 크고 입도 크고 머리도 크고 게다가 이마에는 털도났어요. 정말 최악이에요. 그렇죠?”


시든이는 자신이 보기에 못생긴 외모뿐만이 아니라 꿈도 없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는 자신이 부족하게만 느껴져 조금 거칠게 말했다.


어쩌면 다른 친구들이 더욱 부러웠던 이유도 같을지 모르겠다. 딸기친구들, 사과친구들, 오렌지친구들 모두 예쁜데 나는 나를 잘 모른다.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농부선생님은 시든이의 큰 두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시든이 너 요즘 고민이 많아 보이는구나! “

선생님은 기분 좋게 큰소리로 웃으시며 나를 토닥이셨다.


“시든아, 너는 얼마나 멋진 아이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올 겨울을 잘 보내고 나면 너는 스스로 깨닫게 될 거란다. ”


농부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조금은 힘이 났다.


처음에는 형태가 보이지 않아서 슬픈 씨앗이지만,

꽃 피는 봄이 오면 …



나는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키도 훌쩍 자라 있었다.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매서운 바람이 나를 마구 쏘아 부친다. 차가운 눈이 나를 덥어서 춥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던 친구들도 열매반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주변에 놀 친구들도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 조용하고, 놀러 오던 지렁이들도 나비들도 개미들도 더 이상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 외롭고 추운 겨울이 쓸쓸히 지나가고 있었다.


깊은 잠에서 깬 어느 날 서서히 따스한 봄볕이 깃들고 무겁게 날 누르던 눈들도 녹아내리고 있었다.

큰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서 작은 무엇인가가 솟아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친구들처럼 열매반으로 올라가 졸업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가을 함께 놀던 친구들은 열매반으로 올라갔고 멋진 포즈로 졸업사진도 찍어서 시든이에게 올 겨울이 더 외롭고 추웠을 것이다.

친구들이 사진 찍고 즐거어하던 모습을 멀리서 부럽게 바라보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 어쩌면 나도 열매반으로 올라갈지도 몰라! 제발, 제발, 나도 멋지게 되고 싶어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선가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 이건 무슨 향기일까?

처음 느껴보는 황홀한 기분이야. “


시든이의 몸과 가지에 한가득, 전에 본 적 없고 자그마한 무언가가 생겨났다. 시든이는 마치 하얗고 팝콘처럼 몽글몽글한 이 것들이 모두 귀엽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봄날 꽃나무들은 꽃피울 준비를 마쳤다. 가지마다 꽃봉오리들로 가득했다.


시든이는 너무나 행복했다. 자꾸만 움츠리던 시든이의 모습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실크드레스를 입은 우아한 공작부인처럼 자태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하늘거리는 꽃가지 사이에서 시든이의 모습을 본 농부선생님도 감탄을 하셨다. 졸업한 친구들도 지나가는 어린아이들도 모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시든이는 큰 두 눈으로 위를 올려 보았다.

그리고 환호했다. “야호! 내가 벚꽃나무였다니!

내가 아름다운 벚꽃나무였다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씨앗반 시든이예요!“ 그렇다. 시든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방황하고 못생긴 모습에 때때로 슬퍼하고 좌절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벚꽃나무다! 이제는 내가 누군지 정확하 안다.


시든이는 최고로 멋진 졸업사진을 많이 찍을 생각이다. 그리고 나처럼 춥고 외로워하는 친구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전하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형태가 보이지 않아서 슬픈 씨앗이지만,

꽃 피는 봄이 오면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