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에서의 마케팅 3.5년, 그리고 MD로 건너와 0.9년 차 즈음인 소비인간.
한 커뮤니티 매니저 SK가 던진 "마케팅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며칠째 사로잡혀 있다.
그녀는 그 커뮤니티의 프로그램 (즉 상품) 기획부터, 홍보, 운영, 마지막 피드백까지 두루두루- 숲을 보아야 하는 입장.
반면 나는 매출 6조 원가량의 회사 마케팅팀을 거쳐 MD 기획에서, 이 큰 규모의 업체를 움직이게 하는 작은 나무를 다듬는 입장.
사실 그녀가 말하는 '마케팅'과 내가 몸담았던 '마케팅 팀'은 퍽 다르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1. 마케팅 팀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그곳은- 소비자에게 가까이 있지만 결코 최전방은 아니었고, (최전방에는 영업이 있다.)
'무엇이 잘 팔렸는지' 보다 '누가 많이 사 갔는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마켓, 즉 시장을 이루는 소비자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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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생각한 나는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일보다, 소비자가 매력을 느낄만한 상품을 찾는데 더 소질과 흥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xx 이상 사면 1만 원 상품권~' 류의 행사 참여를 귀찮아하는 마당에, 어떻게 기똥찬 프로모션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데에는 같이 주니어 시절을 보낸 HJ의 영향이 컸다.
그는 각종 커뮤니티의 정보를 모은 '꿀팁 주머니' 그 자체였는데, '요즘 롯데백화점에서는 이런 행사를 하고, OO상품권을 사면 oo원 이득이고, 어디에는 무슨 쿠폰이 있고...' 등에 능통한 친구였다.
반면 나는 그런 정보엔 '오...'라는 감탄사가 끝이었고, 다만 '새로 오픈한 XX매장, 이번에 누구랑 콜라보 한 XX 상품, 한정판!!' 등에 강했더랬다.
3. 왜 마케팅에서 MD로 갔나
내가 하고 싶던 '마케팅' (마케팅 팀이 아닌, 고객에게 상품이 전달되는 프로세스로서의 마케팅)은 내가 몸담은 회사에서는 MD가 만들어 낸다는 결론을 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마케팅팀은 주변 유명 베이커리와 제휴를 맺어 '구매'를 이끌어 내는 마케팅을 행할 수 있었지만-
단독상품을 구성하고, 브랜드와 함께 행사를 기획해서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마케팅은, 상품을 주무르는 MD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다양한 물건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유통업'에서는 분명 상품 구성에 손을 댈 수 있어야, 그것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4. 그래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마케팅인데?_규모의 문제
소위 마케팅의 아버지 필립 코틀러가 이야기하는 마케팅은 이렇다.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제품, 아이디어, 서비스 등을 관리하는 제반 활동". 결국 일단 상품을 만들고자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 상품이 소비자의 품으로 들어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마케팅이란 이야기다.
다만 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과정을 세분화해서 제각기의 사람들에게 롤을 나눠주게 되는데,
'마케팅 팀'이라고 명명된 곳은 조금 더 상품 흐름의 끝단,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그 끄트머리 쪽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속한 유통업의 경우이고, 업의 형태 (제조업, 서비스업 등등)에 따라 이 마케팅의 범위는 얼마든지.. 늘었다 줄었다가 가능하겠지.
질문을 던져준 커뮤니티 매니저 SK는 모든 상품의 탄생에서 마무리까지 책임지고 있기에, 당연히 일반 회사에서 말하는 마케팅의 범위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 결론
회사의 존경하는 분들 중 한 분인 EY 과장님의 한마디가 떠오르는 밤.
"야, 마켓을 알아야 팅을 할거 아냐!? 시장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닥치는 대로 프로모션 만들고 광고하고 물건 사 오면 뭐가 된다니?"
마케팅 팀이건, 물류 건, MD 이건, 영업이건- 모두가 '우리는 마켓(시장)을 다루고 있다. 마케팅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 하에 움직인다면 꽤 많은 기발한 해답들이 나올지 모른다.
문제는- 코앞의 나무를 베어 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숲을 볼 겨를이 잘 안 생긴다는 것.
별 수 있나. 끊임없이 멀고 크게 봐야지 뭐... 나 원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