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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와인

귀부와인의 진정한 가치

by 심현희

술꾼이 되면 왜 단맛이 싫어질까. 신기하게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는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과자나 초콜릿 디저트 따위가 먹고싶지 않아진다. 군것질도 전혀 안하고 담배도 피지 않는 내게 주기적으로 강렬한 욕망이 드는 음식은 오로지 술과 고기 뿐이다.



그런 면에서 디저트와인은 개인적인 와인리스트에서 가장 안중요한 와인(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으로 분류되곤 했다. 술에서 단맛이 지나치게 튀면 많이 마시지 못한다. 술꾼에게 좋은 술이란 많이, 자주마셔도 질리지 않는 술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피노누아나 스파클링와인이 와인 매니아들의 종착역이라고 하는 것도 음용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BJCP기준 100가지 종류가 넘는 맥주도 마시다 보면 결국 라거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포도를 응축시켜 만드는 귀부와인은 생산량 자체가 적을 수 밖에 없고 숙성 기간도 오래 걸려 고급와인에 속한다.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주로 술자리 맨 마지막 순서에 따는 귀부 와인을 오픈하면 마시고 집에 가야하니까 아쉬운 이유도 있다. 그래서 누가 "샤토 디캠 먹을래 부르고뉴 퍼미에 크뤼" 먹을래 물으면 난 닥 후자를 택하겠지만. (샤토 디캠 달라해서 당근에 팔고 그 돈으로 더 좋은 와인 사먹으라는 식의 태클은 사절하겠음).



최근에 마신 20년 묵힌 소테른 덕분에 귀부와인의 진정한 가치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한모금 안에서도 꽉 찬 맛이 펼쳐졌다. 그리고 단맛이 너무 우아했다. 한잔을 따르며 "자 오늘의 술자리는 거의 끝났습니다. 이거 마시고 이제 그만 집에 가시죠" 라고 말하면 웬만한 사람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집에 갈 것 같다.



하지만 알코올 돼지인 나는 이 완벽한 귀부와인으로 마무리된 술자리에서조차 배부름을 느끼지 못하고 탐욕스럽게도 2차를 찾아 헤매었고 결국 문래동에서 양재동까지 이동해 각종 와인을 더 때려붓고 모든 기억을 상실하고 말았다. 샤토 드 파그로 2002의 강렬하고 꽉 찬 맛을 제외하고는.



이 집은 한때 디캠과 같은 패밀리였다고 한다. 컨벤셔널 와인의 세계를 경험하다보면 입지와 헤리티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로마네꽁띠 옆집이라든가, 르팽과 분가했다든가. 사토 드 파그로처럼 디캠에서 나왔다던가.



나는 103호에 살고 있는데 101호 102호에 사는 할머니가 디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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