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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일걸즈 Oct 29. 2020

이름을 묻는 방법

Part 1. 레벨 1의 여행자

하품을 쩍쩍 내뱉었다. 아즈메르까지 밤새 타고 온 야간열차는 마치 몇 년 동안 운행을 하지 않은 것처럼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물티슈로 간이 침상을 한번 슥 훑으니 회갈빛 모래 먼지가 수북이 묻어났다. 나는 으윽, 신음을 내뱉으며 먼지 묻은 물티슈를 루에게 보여줬다. 루도 으윽, 신음을 뱉으며 물티슈로 침상을 닦았다. 그런 곳에서 열 시간을 누워 있었으니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사이에 먼지가 잔뜩 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아즈메르에서 푸시카르까지는 차로 한 시간 가량 더 들어가야 했다. 평소라면 집요하게 흥정을 했을 택시비를 대충 깎고 배낭을 실었다. 차 창 밖으로 멋진 돌산이 펼쳐졌지만 그 풍경이 별 감흥 없을 만큼 나는 지쳐 있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샤워실로 뛰어들어 옷을 벗어던졌다. 따뜻한 물이 세차게 머리 위를 타고 흐르자 금세 몸이 녹진해졌다.


샤워를 마치고 한층 느긋해진 마음으로 방문을 열었다. 텅 빈 방에는 금발 머리를 풀어헤친 남자만이 내 옆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는 허리를 침대 머리맡에 늘어뜨리듯 기대고 잎담배를 말며 안녕, 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입가에 띤 미소가 시원했다. 나는 긴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정리하며 안녕이라는 인사를 웅얼거렸다. 방문 앞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을 첫 만남부터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으나 그는 내 가방엔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계속해서 잎담배를 말며 물었다.

“What’s your name? 이름이 뭐야?”


그 순간, 안녕이라는 인사말 바로 다음으로 그가 내 이름을 묻는 순간. 수많은 얼굴들이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런던, 아일랜드, 에티오피아, 이름이 아닌 것들로 기억되는 사람들의 얼굴이. 나는 왜 지금껏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단숨에 그가 좋아져 버렸다.


-


인도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이태원의 고깃집에서 일할 때였다. 나는 그곳에서 기름이 잔뜩 낀 불판을 닦으며 ‘한 시간에 9천 원은 550루피… 550루피는 이틀 숙박비…’라는 주문을 몇백 번이고 외웠더랬다. 거만한 손님과 짜증 나는 상사, 잦은 화상에 종종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이 주문은 달궈진 속을 잠시나마 식혀주곤 했다.


첫 출근 날이었다. 오픈 전의 식당은 고기 냄새 하나 없이 말끔했다. 유니폼으로는 청색 남방과 검은색 모자가 주어졌다. 머리는 망 안에 말끔히 집어넣어야 했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똑딱이 핀으로 고정해야 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어찌나 많은지, 형형색색의 옷을 즐겨 입는 나로서는 칙칙한 유니폼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 쪽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테이블에는 이미 다른 직원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모두 청색 유니폼에 검은색 바지, 검은색 모자를 쓰고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었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 사이에 속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묘했다. 나는 소매를 괜스레 한번 걷어붙이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학교가 아닌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였다.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가 새삼 어색하게 들려왔다. 시끄럽게 수다를 떨던 사람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여러 명이 뱉은 안녕하세요, 라는 우물거리는 인사말이 뭉개져 들려왔다. 곧이어 눈이 유난히 똥그랗던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뇌가 순간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춘 것 같았다. 이름이 아니라 나이를 먼저 묻다니? 나는 애써 혼란스러움을 감추며 대답했다.

“어… 스무 살이요…”

사람들은 각각의 리액션을 취했다. 막내가 왔다느니, 어려서 좋겠다느니, 그중에는 늙으면 죽어야 한다며 낄낄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동안 왁자한 웃음소리가 한데 뒤섞여 테이블 위를 메웠다. 나도 멋쩍게 웃음을 흘렸지만 대체 어디가 웃음 포인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자리에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는 30대 남자 한 명뿐이었고, 늙었으니 죽어야 한다던 사람은 고작 스물다섯 살이었다.


첫 출근 후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하나 둘 내 이름을 물어왔다. 나는 기꺼이 내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이 ‘막내’ 직원의 이름보단 ‘급식’이나 ‘스무 살’이라는 별명을 더 즐겨 불렀다. 급식을 먹은 건 학교를 나온 열다섯 살이 마지막이었는데도 말이다. 내 나이는 하나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스무 살이란 젊음이 부러우면서 동시에 우습기도 하다는 듯한 그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들이 어쭙잖은 장난을 치며 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그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한 ‘나이주의’는 비단 내가 일했던 고깃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어느 곳이든 내 이름보다 나이를 먼저 알고 싶어 하는 사람 투성이었다. 나이를 알게 되면 그들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인 후 알아서 우리의 관계를 정립했다. 만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아 턱 하니 말을 놓는 이도 있었다. 그의 무례함에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되레 내가 예의 없는 ‘아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이를 묻는 건 존댓말과 반말의 사회에서 거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절차라고 말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별칭으로 서로를 불렀던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이러한 문화를 맞닥뜨리니, 마치 보통의 세상으로 나왔다는 신고식처럼 느껴졌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나이는 기억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8개월 중 절반은 이 사람 저 사람과 섞여 잠이 들었다. 내가 이용한 숙박 시설의 대부분은 혼성 도미토리였다. 혼성 도미토리는 브라자와 빤쓰 차림을 한 서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호주 청년의 빨래판 복근을 보았고, 또 어떤 날은 뚱뚱한 영국 아저씨가 파란 줄무늬 팬티만 입은 채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모두가 제집 안방인 양 옷을 입고 벗어던지는 순간 방문을 열면 나는 “쏘리”라는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었는데, 자신의 속옷을 보인 사람들-특히 남성 여행자들-중 열에 아홉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Don’t be sorry!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여행 중 만난 이들과 온갖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다시금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문화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이들과 며칠을 같이 먹고 자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서로의 청소년기와 연애사까지 다 알게 되어도 나이는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건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자연스러움이 참 좋았다. 그게 바로 내가 믿는 세상이었다. 서로의 이름이면 전부인 세상, 다른 장애물은 허물어지는 세상.


©성지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이름 묻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한국이 아닌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그곳의 삶은 어떨지 끊임없이 탐구하기에만 집중했던 탓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름보다 그들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눴음에도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헤어지는 여행자들이 늘어났다. 나중에 이름을 알게 되어도 머릿속엔 남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를 ‘사우쓰 코리아 South Korea’라는 단어로 기억할 게 분명했다. 혹은 아예 내가 기억에 남지 않았거나.


“하우 아 유 How are you?”라는 질문 다음으로 늘 “웨어 아 유 프롬 Where are you from?”이 뒤따라왔던 여행에서, 나의 이름을 가장 먼저 물어보았던 사람이 바로 금발 머리 남자 브렌트였다. 내가 가벼운 충격에 휩싸여 버벅거리는 사이 브렌트는 종알종알 대화를 잘도 이어나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온 그는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집을 팔았다고? 그는 기껏해야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날이 갈수록 아파트 집값이 치솟는 서울을 생각했다. 이제라도 집을 사라며 엄마를 부추기던 엄마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브렌트는 무슨 배짱으로 집을 팔았을까. 내가 아무리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들 중년의 나이에 집을 팔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사자 갈기를 연상시키는 수염과 머리, 정글의 왕 같은 여유로운 걸음걸이, 그리고 빨래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 체크무늬 파자마 바지를 입은 채 호스텔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어느 날은 요르단 친구와 친근하게 담배를 피웠고 또 어떤 날은 스위스 친구와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었다. 숙소에서 브렌트가 보이지 않을 땐 그가 혼자 바깥나들이를 하러 나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친밀히 지내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노련한 여행자였다.

브렌트의 침대와 내 침대는 서로의 코 고는 소리를 가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딱 붙어 있었다.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뜨고 침대에 누우며 나는 브렌트의 빤쓰 차림에, 그는 이른 아침 폭탄이 된 내 곱슬머리에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호스텔의 여행자들은 전부 브렌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그곳에 원래부터 있던 사람 같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가 브렌트를 옆집 아저씨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진. 여행 중 친구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단어의 간결함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모든 문장의 앞뒤로 내 이름을 넣어 말했다. 진, 잘 잤어? 진, 어디가? 진, 같이 수영하러 갈래? 진, 진.

나는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이 좋았다. 각자가 가진 목소리가 좋았고 발음이 좋았다. 높고 낮은 톤으로 불리는 내 이름이 좋았다.

브렌트는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불렀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숙소에서 그를 만나는 데도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럼 우리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한차례 수다를 떤 후 다시 각자 갈 길을 떠났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면 자연스레 옆에 앉아 기억도 나지 않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이란 다양한 눈빛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탐욕스러운 눈빛, 무시하고 깔보는 눈빛, 비웃는 눈빛,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눈빛. 그 무수히 많은 눈빛을 수개월 간 지나치며 나는 때로 분노했다. 때론 상처 받고 공포에 질렸다. 화가 나서 주먹을 흔들다가도 진절머리가 나 자리를 피했다. 그때 나타난 브렌트의 눈빛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한결같은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나를 보고 웃는 그의 앞에 있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다가도 울컥하며,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이가 많았지만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동양인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갖고 있던 다른 몇 남성들 같지도 않았다. 얘기를 하다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해지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온종일 도심의 소음과 지나친 시선에 지쳐있다가도 브렌트의 옆에 있으면 평안했다. 나의 긴 여행 중 가장 안전함을 느꼈던 순간은 바로 브렌트의 옆에 있을 때였다. 그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런 브렌트의 옆에서 <빨간 머리 앤>의 매튜 아저씨와 앤, <라이온 킹>의 마법사 원숭이와 어린 심바, 그 사이 어디 즈음에 그와 내가 속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브렌트가 체크무늬 파자마를 청바지로 갈아입었을 때, 나는 우리에게 작별의 순간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브렌트는 만나는 것처럼 헤어짐에도 능숙했다. 그는 다른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크게 포옹을 하며 말했다.

“몸조심하고, 안전히 여행해야 해.”

브렌트는 늘 그랬던 것처럼, 뜨끈하고 우직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쿨하게 뒤돌아서 성큼성큼 호스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은 사자 갈깃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 훔쳤다.

브렌트는 마음이 잔뜩 지쳐 어떤 아늑함이 절실했던 내게, 꼭 알맞게 나타나 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수백 번 옷깃을 스치며 나는 그의 존재에 익숙해지다 못해 ‘길들여’ 진 걸지도 몰랐다. 사막여우에게 어린 왕자가 나타났던 것처럼, 그렇게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졌던 사막여우처럼.


브렌트를 만난 이후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꼭 기억하기 위해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아, 에, 우 소리가 들어간 이름. A, B, C가 들어간 이름. 서로를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도 짧은 단어들을 통해 상대와의 관계가 어떤 빛깔을 띠게 되는지, 그리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브렌트를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행이 끝날 때까지 브렌트만큼 작별에도 익숙한 여행자가 되지는 못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의 작별이 어려웠고 때론 힘에 부쳤다. 섭섭한 마음에 하루를 우울하게 보낸 적도 잦았다. 내겐 더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때쯤이면 브렌트 같은 여행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편안하게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는, 옆에 있는 이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눈빛을 가진, 기뻐하되 너무 들뜨지 않고 아쉽지만 너무 슬퍼하지 않는, 그런 여행자. 그런 능숙하고 단단한 여행자가.


여전히 금발 머리를 잔뜩 헝클어뜨린 채 스리랑카 구석구석을 탐험 중인 브렌트에게 이 기회를 빌려 늦은 감사 인사를 보낸다.


©성지윤
글 옥의진(유랑), 사진 성지윤(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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